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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5. 2017

스케치북은 종이가 아니에요.

자유롭게 즐겁게 창작 과정을 기록하는 스케치북 만들기

흰 도화지를 이젤에 걸어두고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잡지나 책을 뒤적이며 영감을 받고자 노력해보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없고 결국 글씨만 꼼꼼히 읽게 된다. 유명한 대가의 유명한 그림책을 뒤적이다 하나를 선택해서 따라 그리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비슷한 색감과 질감을 살려내면 뿌듯해진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을 포트폴리오에 넣을 수 있을까?


5년전 그리고 싶은 소재를 찾아 카페를 찾아다니던 때


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학교의 모집요강을 살펴보면 직접적으로 사진을 보고 똑같이 그리지 말라고 명시해 놓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관찰 드로잉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We are interested in seeing work that demonstrates your drawing ability, so please make sure that you include at least 5 drawings/paintings of still-life setups or the human body (drawn from life, not from photographic reference). - IDEA school of design- 


You should include work that gives evidence of your ability and willingness to look closely and carefully at a subject. -NSCAD- 


하지만 포트폴리오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처음부터 만들어내긴 어렵다. 특히 빨리 결과물을 내고 싶은 성질 급한 나의 경우에도 매일 새로운 발상을 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훈련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동안 답답하기만 했다. 흰 도화지를 앞에 두고 한 번에 하나씩 그림을 완성해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버려야 했다. 이는 실패작 없이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그려내겠다는 자만일 뿐이었고 오히려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 생각의 근육을 풀기에 유용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준비하기 가장 쉬운 포트폴리오 항목이 바로 '스케치북'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스케치북을 반드시 제출하라고 하기도 하고 따로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주기도 한다. 



스케치북은 완성된 작품으로 가기 위해 시도했던 모든 자료조사, 스케치, 실험, 시험작을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어 내가 ‘춤’이라는 주제로 하나의 3D 조각을 만들었다면 처음에 무엇을 보고 영감을 받았는지에 대한 에세이, 문화적/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대한 자료조사, 2D재료(연필, 펜, 물감 등) 스케치, 조각으로 발전해서 컬러와 재료에 대한 다양한 실험 등을 모두 묶어 스케치북으로 만들 수 있다. 


죽음, 나이듦, 주름에 대한 스케치
춤, 움직임에 대한 스케치
움직임을 기록하는 과정을 모은 스케치
'글자의 규칙성도 움직임과 관련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스케치


학생 입장에서는 완성작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남기는 것과 같아서 주제를 깊게 고민해보는 과정과 진지함, 창의성 등 개인의 특성까지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어떤 학교에서는 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들과 전혀 다른 나만의 개성이 담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동시에 여러 가지 주제를 고민하게 되더라도 약 3개월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만들어야 부담이 되지 않는다. 


만약 전체 작품을 20개 제출해야 한다면 20개의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각각의 스케치북을 모두 만들어야 할까? 시간이 엄청 많아서 많은 주제를 다양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주제를 3개 이내로 정해서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한 가지 주제에서 서너 가지의 그림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켰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계속 이게 맞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어디까지 열심히 스케치북을 만들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답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지점까지 했고 이제 됐다는 곳에서 멈췄다. 


그래도 끊임없이 신경을 썼던 한 가지는 재료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흰 종이에 연필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요리를 할 때, 재료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그림 재료도 다양할수록 좋지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 많이 사용해봐야 하기 때문에 스케치북에 사용한 재료는 전체적으로는 5~6가지로 한정했다. 쓸 수 있는 재료에 대한 자료는 학교에서 제시한 것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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