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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29. 2017

그리는 삶과 그리는 일

방송사 공채에 대해

방송사 공채는 어렵다. 채널이 많아지긴 했지만 PD, 기자, 아나운서를 꿈꾸는 사람은 많고 뽑는 인원은 적으니 경쟁은 치열하다. 내가 다녔던 방송사는 최근 신입 공채를 하지 않아 지옥의 5단계 전형은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내가 입사할 때는 만리장성처럼 끄떡없이 존재했다. 회사에서 올리는 채용공고를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면 ‘예능’, ‘드라마’, ‘보도’ 등과 함께 ‘방송경영’이라는 부문이 있다. 여기에는 ‘행정’, '회계’, ’ 인사’ 등 어느 회사에나 있을법한 관리부서와 ‘해외사업’, ‘문화사업’ 등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는 부서가 포함되어 있다.


PD, 기자, 아나운서는 이름 자체가 직업이고 정체성이다. 부장, 과장, 차장 같은 흔해빠진 수식어 대신 ‘이 PD’, ‘홍기자’, '누구누구 아나운서’로 불리는 직업만큼 멋져 보이는 게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꼬리표로 달고 다니는 이것은 젊음의 상징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내가 이렇게까지 ‘극찬’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방송사에서 일했으면서도 갖지 못한 직함이기 때문이다. 방송경영은 10년 차가 넘어가야 겨우 ‘차장, 부장’이 붙기 시작한다. 요즘 다른 분야에서 흔하게 쓰는 프로젝트 디렉터의 약자로 ‘PD’를 붙이면 뭔가 공평해 보이고 입에도 착 붙을 텐데 역시 변화는 쉽지 않다.


이 꼬리표가 갖는 매력과 큰 회사의 장점이 합쳐지니 수많은 PD 준비생을 유혹하기 충분하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누구의 딸이며 아들이 되었듯 PD로 뽑힌 사람은 퇴직할 때까지 PD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체계에 포함되고 선배에게 교육받고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적응해간다. 그러니 들어가서 아무리 고생하더라도 일단 그 집단에 들어가야 하는 게 중요하다. 시청자를 즐겁게 해 주고 계속 창조하는 직업, 그러면서 적당한 돈과 안정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거대 방송사의 장점은 요즘같이 살기 힘든 세상에 빛과 소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회계부에서, 혹은 다른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했다. 대충 일반 회사의 조직도에 빗대어 설명하면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물었다.

‘아, 근데 나 내일 XX방송국 면접 있어. 뭘 보여주면 될까?’


슬프게도 나와 이야기를 나눈 친구 대부분은 나처럼 ‘방송경영’이 아니라 제작부서에서 일하길 바랐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웃기고, 방송이 끝나면 쿠바 같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쿨한 청년의 삶을 꿈꾸었다. 그들의 꿈은 ‘PD’였다. 꿈의 직업화, 덕업 일치를 간절히 바라면서 온갖 방송사의 공채에 지원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높은 경쟁률은 최고의 인재를 뽑을 수 없게 만든다. 1,2명 뽑는 예능 PD 공채에서 어떻게 위험을 감수하고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사람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개성이나 창의성은 자로 키높이를 잴 수도 없고 짧은 시간 내에 평가도 어렵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조직에 적응 잘하고 기존 질서에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을 우선 뽑으려고 들 거 같다. 2천 명이 지원해도 2명, 5천 명이 지원해도 2명을 뽑으니 이건 바늘구멍에 머리를 들이미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행운의 2명을 제외한 나머지 4천8백8십8명은 절대 PD가 될 수 없는 걸까.


PD, 작가, 영화감독, 화가 등 직업의 공통점은 ‘만든다’에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글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만든다. 만드는 삶은 단순하다. 만들면 만드는 삶이 된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명은 쉽게 쓰기 부담스럽지만 ‘가끔 핸드폰으로 영상 찍어요.’는 쉽다. 일의 속성을 풀이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여기서 만드는 삶과 만드는 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다.


PD를 꿈꾸는 친구에게 ‘일단 뭘 좀 찍어봐, 네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기획서를 쓰고 영상을 만들어봐.’라고 이야기하면 반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카메라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편집 프로그램 다룰 줄도 모르는데 뭘 만들어? 일단 입사하고 해야지.’


미안, 너는 영원히 만드는 삶은 살기 어려울지도 몰라.



몇 년 전 파리의 북서쪽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를 찾았다. 고흐가 죽기 전 머물렀던 라부여 인숙의 다락방에 힘겹게 올라 몇 분간 머물렀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작가인 반 고흐는 정작 생전에 개인전 한 번 열어보지 못했다. 오베르시가 고흐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다락방에 고흐 그림을 사서 걸어주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텅 빈 공간이 더 많았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라 밖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는데 방은 어두웠다. 빛마저 외면한 공간이 외로웠다.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 고흐의 삶은 낭만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현실적이어서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그림 같은 삶이랄까. 동시에 두려움도 갖고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불행을 친구처럼 여겨야 하는 걸까? 그리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 가난과 외로움을 감수할만한 용기가 필요하다면 누가 기꺼이 그 길을 가려고 할까?


반대로 앤디 워홀같이 엄청나게 성공한 예술가의 그림자는 그 뒤를 밟아가기도 어렵다. 운도 좋고 실력도 있고 시대와 잘 맞아야 하는 현대 예술가로 성공하는 확률이나 그 어떤 더군다나 평범한 월급쟁이가 실력을 갈고닦아 어느 순간 반짝 유명해질 가능성도 실제 우리 삶과는 멀다. 하지만 이미 유명한 사람은 뭘 하더라도 관심을 얻는 시대이기도 하다. 연예인이 전시회를 여는 소식은 이제 대중에게 익숙한 편이고 유명한 가수의 앨범 커버를 그리는 작가가 한순간 인스타그램의 스타가 되기도 한다. 인재는 흔하고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좁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작품으로 먹고살 수 있는 전업화가가 되는 길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림을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하며 글로 정리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하고 싶을 뿐이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PD가 되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고 방송사 공채에 도전하는 시기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무엇이든 만들어봐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그리는 일보다 그리는 삶을 먼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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