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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05. 2017

안녕, 할리팩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7월 12일 밤 비행기로 캐나다에 도착한 지 3주가 지났다.


토론토 경유로 총 1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은 하나도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체크인을 앞두고 왕복 비행기 표를 체크하며 짧은 여행기간을 아쉬워하는 대신 편도 비행기를 들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었다. 


전날 밤 한 시간도 자지 않은 탓에 자리에 앉자마자 거의 쭉~ 수면 상태였다. 앞으로 한동안 먹지 못할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의지를 내세워 꾸역꾸역 밥을 먹고 다시 잤다. 평화롭게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지만 예상대로 입국심사대 줄은 길었다. 기압 차이 때문에 착륙할 때마다 겪는 아랫배의 묵직한 통증을 느끼고 'Washroom' 표시를 애타게 찾으며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선 사람들의 긴 줄을 이탈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번 한 번은 제발 내 말을 들어줘. 더 이상 움직이지 마!' 꾸룩꾸룩 아랫배가 다행히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두 시간 넘게 버텨주었다.


3시간 40분은 금방 지나갔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이미 한 시간 연착되어 늦게 토론토 땅을 밟은 터라 입국심사대를 지나 비자를 받고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입국 수속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넉넉한 웃음을 가진 입담 좋은 직원 덕분에 지친 여행자들은 웃었지만 나는 속이 타기 시작했다. 캐나다 방식에 익숙해지기엔 아직 난 빨리빨리 한국인이었다. 


캐나다 첫날, 꾸룩꾸룩한 내 뱃속 같았던 하늘

결국 비행기를 놓쳤다. 


비자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간간히 항의를 했지만 직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가끔 운 좋게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통역을 해주기 위해 기다리는 직원을 이용해 맨 앞으로 가곤 했지만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국내선이니 뭐 다음 거 타면 되겠지.' 말은 쉽게 내뱉었지만 마음까지 쉽게 가벼워지진 않았다. 


나만큼이나 지친 직원이 만들어준 비자서류를 들고 바삐 나가려는데 또 다른 직원이 잠깐 보자며 나를 세웠다. '너 어차피 비행기 놓쳤네. 이왕 놓친 김에 SIN 만들고 가면 어때? 내가 맨 앞으로 넣어줄게.' 

내 비행기표를 본 잘생긴 청년이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내 가방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무한정 돌고 있을 것이며 어디서 표를 다시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OK.'


SIN(Social Insurance Number)은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번호다.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으로 발급되는 게 아니라 A4 종이에 인쇄돼서 나온다. 갑자기 '네 엄마의 first name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자 머리가 멍해졌다. 우리 엄마 이름을 영어로 어떻게 쓰더라? 


다행히 20분 만에 우리 둘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친절했던 청년은 자신의 임무를 다해서 기쁜지 내 얼굴을 보고 SIN 잘 받았냐며 묻고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나 한국 놀러 가고 싶은데, 언제 가면 좋을까?' 난 내 구겨진 얼굴을 차마 숨길 수 없어 대충 얼버무렸다. '지금은 너무 더워. 가을에 가.' 자신이 원래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는 친절하게 짐을 찾은 후 Air Canada 카운터에 가면 된다고 위치를 알려줬다.


하지만 짐이 보이지 않았다. 23kg을 딱 맞추고 기뻐했던 트렁크 3개와 추가금을 내고 가져온 32.2kg 대형 짐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국심사와 비자 심사를 거쳐 SIN까지 받느라 3시간이 지나가버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의 순서가 이미 넘어가버린 지 오래였다. 새로운 가방이 쏟아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를 왔다 갔다 하며 겨우 무한정 루프를 돌고 있던 짐을 찾았다. 식은땀이 줄기차게 흘렀다. 


할리팩스 행 비행기에 타니 몇 년 전 티오만 섬에 놀러 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작은 경비행기는 휴가의 기쁨을 안고 달려온 유럽인을 싣고 붕붕붕 날았다. 작은 비행기가 기류에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할리팩스행 비행기가 다른 점이 있다면 에어컨 시설이 너무 빵빵해서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는 거다. 담요 한 장 주지 않는 비행기에서 오들오들 떨며 얼어 죽는 꿈을 꾸었다 깨는 일을 반복하며 2시간 반을 날았다. 


2주간 우리집이 되주었던 에어비엔비 숙소. 딱 하나 흠이 있다면 매트리스가 너무 안좋아서 잠에서 계속 깰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 할리팩스에 간다면, 그리고 비행기를 놓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 할리팩스 공항에 내려 다시 당황하고 싶지 않다면 Driver Dave의 공항 택시 서비스를 추천하고 싶다. 문자로 예약할 수 있는 이 택시를 나는 한국에서 iMessage의 놀라운 기능을 이용해 국제번호로 예약했다. 비행기를 놓쳤을 때도 공항 wifi로 쉽게 다시 예약을 잡았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바로 짐을 싣고 떠날 수 있었다. 


할리팩스 공항이 도심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수도꼭지 사용법도 제대로 몰라 고양이 세수만 한 채 쓰러져 잠들었다. 덕분에 12시간의 시차는 하루 만에 적응했다. 


그리고 7시간 후, 나는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며 어떤 강당에 앉아 있었다. 


자외선도 그대로 통과시켜버리는 맑은 할리팩스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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