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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1. 2017

집과 집 사이

캐나다 할리팩스에서 집 구하기 두 번째

올해 서울의 찜통더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 2주 정도 서래마을에 있는 부모님 집에 머물렀는데 집에서 나오면 내가 아스팔트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햄버거 스테이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나마 시원한 카페와 맛집이 많은 덕분에 미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당분간 먹지 못할 빙수,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베이커리, 한식집을 전전하며 외식의 자유를 누렸다.


할리팩스에 도착한 후 매일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국을 떠올렸다. 할리팩스의 카페는 5시면 문을 닫고 외식은 비싸고 입맛에 착 맞는 음식은 직접 해 먹는 거 말곤 별도리가 없다. 하지만 깨끗한 공기와 바람이 나에겐 더 필요했다. 미각 대신 다른 감각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무도 날 재촉하지 않으니 맘껏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았다.



집을 구하는 과정은 짧았지만 많은 일을 돌이켜보게 했다. 서울에서 내 첫 전세를 구하고 3년간 살았던 경험과 비교했을 때 캐나다의 집 구하기 과정은 참 달랐다. 큰 도시는 부동산 에이전트가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할리팩스는 작은 도시라 개개인의 월세까지 찾아주는 회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보통 집을 구하려면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부동산에 눈도장 찍는 일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살고 싶은 길이름을 일단 대충 알아두고 아파트 회사를 찾거나 집주인이 직접 kijiji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 올린 글을 훑어보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한국에서부터 열심히 kijiji를 들여다봤지만 사진의 질도 딱히 좋지 않고 어느 지역이 좋은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혼란은 나뿐 아니라 꽤 많은 사람이 겪는지, 한국의 네이버 지식인 같은 reddit 사이트에 자주 비슷한 질문이 올라왔다.


What are areas to avoid when appartment hunting ,

Safe Place to live in Halifax?


물론 개인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이런 글을 참고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살던 곳에서 별로 좋지 못한 경험을 한 사람은 당연히 안 좋은 이야기를 할 거고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부풀려서 얘기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직접 그 거리를 걸어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캐나다 오기 전에도 걱정이 많아 잠을 설치다가 뭔가 생산적인 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할리팩스 지역의 아파트 업체를 검색했다. 구글맵으로 홈페이지에 나온 아파트의 주소를 찍어 미리 느낌(?)을 확인했다. 우선 내가 다닐 학교에서 도보로 약 30분 내에 있는 아파트부터 찾아 메일을 보냈다.


Hello,


My name is _____. I’ll be moving to Dartmouth to study at ______  as an international student. I’m looking for an 2 bedroom apartment near campus or downtown in Dartmouth. I figure out your company manages various apartments and wondering if you can recommend places I can live in. My condition is


- non-smoking building

- $700 ~ $1,000 (including utilities & parking)

- August 1st

- year-to-year

- laminate floor


I’ll be available on _____.

If you have properties that match my condition, can I arrange the viewing?


Thanks.


대충 이렇게 써서 5군데 정도 보내니 모두 하루 안에 답장을 받았다.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매물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올리지 못한 매물에 대한 정보도 같이 받을 수 있었다. 집을 직접 보고 싶으면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할리팩스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개통하고서야 집 보는 예약을 할 수 있었다. Kijiji 사이트에 올라오는 매물도 메일 주소보다는 전화번호를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예약을 잡고 집을 보기 시작했다.




총 7군데 정도 보고 나니 생각보다 마룻바닥으로 된 집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이 지역 특성상 카펫이 깔린 거실은 일반적이었지만 아무리 청소를 한다 해도 회색의 거무튀튀한 카펫은 지저분해 보였다. 물론 집주인들은 입주자가 나가면 무조건 업체를 불러 카펫 청소를 하니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1년 이상을 살 집이니 중간에 어쨌든 내가 청소를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공기 좋은 캐나다에 살면서 먼지 날리는 실내 공기를 생각하니 아무리 위치가 좋아도 카펫 깔린 집은 결국 퇴짜를 놓았다.


내 한 달 집세 예상은 900불이었는데 그 예산으로 방 두 개 아파트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처음에 원했던 '하우스'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서울 아파트에서만 살았던지라 마당 있는 집에 월세나마 살고 싶었는데 괜찮은 마룻바닥을 가진 좋은 위치의 하우스는 통째로 빌리려면 1,300불은 줘야 했다. 1층만 빌리거나 2층의 일부만 빌리면서 부엌을 같이 쓰는 형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남편이 거절했다. 또 하나, 하우스는 일반적으로 유틸리티가 많이 나온다. power, hot water, heat를 모두 합하면 한 달에 약 200불이 추가된다고 하니 월세가 너무 비싸져서 나같이 가난한 학생에겐 큰 부담이었다.


두세 군데를 우선순위에 두고 집주인에게 다시 연락했다. 집을 본 후 받았던 지원서를 작성해서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냈는데 난감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너희가 레퍼런스가 없어서 안될 것 같아.'

'응? 내가 캐나다가 처음이라 전 집주인이 없다고 얘기했잖아. 그럼 어떡해야 해?'

'내가 매니저와 얘기는 해 보겠지만 레퍼런스가 없으면 어려울 거 같아. 친구나 가족은 없어?'

'물론 있지. 하지만 한국 전화번호와 주소인데 괜찮아?'

'아니, 캐나다 전화번호와 주소가 있어야 해.'

'.....'


레퍼런스! 그 후 쭉 레퍼런스가 문제였다. 다니던 회사의 경력증명서나 비자 문서는 모두 종이 쪼가리가 됐고 나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 나의 신용을 증명해줘야 했다. 하지만 없는 레퍼런스를 뚝딱 만들 수도 없으니 아무 연고도 없이 무모하게 이 곳에 왔던 내가 조금 서러워졌다. 그래도 최대한 내 상황을 설명하며 애쓰다가 결국 계좌잔고 내역서와 학교 입학증명서를 떼서 '내가 돈이 있고 충분히 머물 계획임'을 증명하기로 했다.


이삿날, 트렁크 4개가 전부인 이삿짐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나가야 할 날짜가 다가오니 다른 곳으로 옮겨서 더 찾아볼지 적당한 곳으로 이사할지 결정해야 했는데 그나마 차선이었던 Killam의 아파트로 들어가기로 했다. Killam은 (아마도) 할리팩스, 다트머스 지역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업체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Lakefront에 길게 늘어선 옛 군인 막사를 개조한 아파트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을 보러 갔을 때는 '버스정류장과 가까운' 아파트를 보여달라고 얘기해서 총 3군데를 보았고 그중 가장 바깥쪽에 있으면서 페인트를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을 최종 선택했다.


지원서를 낼 때는 (1년 치 집세 이상이 입금되어 있는) 통장 잔고증명서, 비자 서류, 학교 입학 통지서 등 내가 낼 수 있는 증명서를 준비해 가서 직원에게 칭찬을 들었다.


'와우, 대단하다. 캐나다 사람들은 널 본받아야 해.'


이게 모두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발생했던 귀찮은 일이라 칭찬을 들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저 어서 끝나고 집에서 누워 낮잠이나 잤으면... 아 근데 가구가 아무것도 없으니 침대도 없고 당장 내일 이사인데, 어떡하지?


지원서류가 통과되었다는 직원을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 마이 베드'를 외치며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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