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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08. 2017

우리 집을 찾아 주세요.

캐나다 할리팩스에서 집 구하기 첫 번째

여행을 할 때 새로운 곳에서 익숙한 행동을 하면 묘한 안정감이 든다. 아침에 같은 음악을 틀고 명상을 하면 신기한 자신감이 흐르고 항상 쓰는 베개커버 냄새를 맡으면 진짜 집이구나 싶다.


2주간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아침마다 새 울음소리가 나를 깨웠다.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밤늦게 누군가 토한 흔적을 피해가며 출근하던 때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아침 풍경이었다. 할리팩스의 여름은 덥지만 해가 지면 바람이 금방 차가워진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쉬다 보면 금방 기온이 떨어져 산책하기 좋다. 7시면 방 전체가 환해져 도저히 눈을 감고 있을 수 없어 침실에서 내려와 부엌에서 커피를 내렸다. 집에서 쓰던 핸드드립 도구를 그대로 가져와 커피를 내리는 게 나의 습관이자 작은 의식이다. 커피가루는 어딜 가나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내 방식대로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할리팩스의 건너편 다트머스의 바눅호수 근처였다. 다운타운으로 가려면 내가 좋아하는 오리가 많은 설리번 연못과 풍경이 예쁜 바눅호수를 항상 지나야 했다. 한가한 풍경에 깨끗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이곳에서 우리는 자주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별거 아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에 오는 길에 내리는 석양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침마다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는 오리를 구경하는 일상이 신기했다.


할리팩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앞으로 살 집이었다.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머문 2주라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길게도 느껴졌는데 막상 집을 알아보고 다니니 시간이 조금 더 여유 있었더라면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하루빨리 우리 집을 찾아 조금 더 맘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컸던지라 어디든 맘에 들면 빨리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집주인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 핸드폰 번호가 있어야 한다. 핸드폰을 개통하기 위해서는 ID와 은행계좌가 필요하고 은행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ID를 우선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 'Access Nova Scotia'를 찾아가 ID카드를 만들었다. Access Nova Scotia는 주민센터같은 곳이다. 전입신고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워낙 서비스가 느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서 1시간 정도 소요됐다. 카드에는 생년월일과 주소 정보가 들어가기 때문에 술을 사거나 우편물을 픽업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신기하게 키와 눈동자 색을 물어봤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여권과 비자 용지를 보여주고 사진을 찍으니 금방 카드를 발급받았다. (발급비용은 17.7불이다.)


다음은 바로 은행계좌를 만들러 갔다. TD에서 만들지 ScotiaBank를 갈지 고민하다 다트머스 다운타운에 있던 ScotiaBank에 무작정 들어갔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정보를 조금 검색해보니 은행마다 학생 계좌는 혜택이 비슷비슷했다. 데빗카드의 사용 횟수나 인출 횟수의 제한이 없었고 수수료도 거의 없었다. 바로 신용카드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왕 노바스코샤 지역에서 살아보기로 했으니 지역은행을 이용해볼까 싶기도 했고 ScotiaBank는 Scene이라는 포인트 적립제도가 있어서 무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 은행은 미리 약속을 잡고 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핸드폰 개통 전이라 지나가는 김에 직접 예약을 하기 위해 들어갔다. 친절하고 푸근하게 생긴 분이 나를 맞아주셨고 아직 어색한 억양의 내 영어를 잘 호응해주시며 Nancy와 다음날 예약을 잡아주셨다. 계좌를 만들 때 필요한 서류 목록은 메일로 받을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계속 느낀 점이지만 메일을 통한 의사소통이 매우 일반적이라는 게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꽤 편한 일이었다. 메일을 쓰면 아무래도 전화로 바로 얘기하는 것보다 생각을 정돈해서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다음 날 Nancy는 역시 친절하게 날 맞아주었고 약 한 시간 동안 별도 방에서 커피를 홀짝 마시며 수다 떨 듯 계좌를 만들었다. 학생용 체크 계좌, 세이빙 계좌, 데빗카드, 신용카드까지 모두 만들었고 신용카드는 약 1주일 후에 지점에서 수령했다. 역시 공인인증서가 없으니 너무너무 편했다. 모바일 앱으로 그때그때 확인하고 궁금한 내용은 웹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같이 처음 캐나다에 오는 외국인이 이렇게 쉽게 계좌를 만들 수 있는 반면, 한국에 가는 외국인도 그렇게 느낄까? 한 번도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의 서비스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각종 보안 프로그램 설치가 나에게도 참 귀찮은 일인데 외국인이 쉽게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


계좌가 있으니 한국돈을 송금해보기로 했다. 한국 번호를 장기 정지했기 때문에 기업은행 인터넷뱅킹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기업은행은 송금, 이체 시 자동응답전화로 인증해야 한다. 정말 불편하다.) 미리 모바일 앱을 깔아 두고 공인인증서를 복사해 왔기 때문에 다행히 송금을 할 수 있었지만 이유 없이 앱이 자꾸 꺼졌다. 결국 송금 한 번을 위해 3시간이 걸렸다. 자고 일어나서 다음 날 돈이 입금된 것은 확인했지만 송금 수수료는 왜 이렇게 비싼지, 또 1회 이체한도에 걸려서 한꺼번에 못한다는 걸 늦게 알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좌를 만들 때 Nancy에게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자 종이 한 장을 출력해줬다. 송금할 때 필요한 내 정보와 은행 정보가 모두 들어가 있는데 만약 처음 송금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 종이를 꼭 받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낙서는 여기에만 하세요.' 덕분에 다른 벽은 깨끗하다.

계좌와 신분증이 있으니 드디어 핸드폰을 개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Bell, Telus, Virgin 등 다양한 통신사가 있지만 난 Koodo를 선택했다. 할리팩스 쇼핑센터를 구경하는 김에 통신사의 프로모션을 보다가 Koodo가 제일 싸다는 점 때문에 선뜻 가입했다. 데이터 3기가, 통화/문자 무제한 플랜이 55불이었다. 유심을 받고 번호를 선택하고 메일로 계정 정보를 받았다. 10분 만에 가입이 끝났고 처음에 크레딧체크 때문에 SIN을 요구했던 게 조금 마음이 걸렸다. 후불제가 아닌 선불제를 선택하면 SIN이 필요가 없지만 요금이 더 비쌌다. 


이제 집을 구할 수 있는 준비는 끝났으니 열심히 알아보고 집을 보러 가는 일만 남았다. 계속 Kijiji에 접속해 올라오는 집을 보고 있는데 썩 마음에 드는 집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점점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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