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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1. 2017

한여름 오리 뺑소니 사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나는 오리와 사랑에 빠졌다.


하얗고 매끈한 털을 가진 그들은 풀밭에서 유유히 풀을 뜯어먹었고 사랑스럽게 뒤뚱거리는 엉덩이가 귀여웠다. 내가 다가가면 멈칫하다가도 놀라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할리팩스 건너편 다트머스의 아이콘 오리들은 지역 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오리에게 주려고 남은 식빵을 챙겨놓고 있다가 산책 갈 겸 설리번 연못을 향했는데 우연히 접속한 reddit에 심상치 않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오리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속보에 놀라 사람들의 증언을 따라가 보니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여느 때처럼 오리들은 횡단보도를 줄지어 건너고 있었다. 도로 건너편 집 잔디의 풀이 맛있기 때문이다. 보통 선두에 있는 오리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도로에 들어서면 차들은 그들이 모두 건널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오늘 오후 어떤 운전수가 오리를 보지 못했고 오리들은 차에 치였다. 운전수는 놀랐는지 차에서 내렸지만 곧 다시 타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목격자 중 한 명이 오리들을 구해 동물병원으로 이송했지만 한 마리는 즉사했고 한 마리는 병원에 도착해 숨을 거뒀고 나머지 한 마리는 크게 다쳤다.' 


몇 시간 후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오리는 총 9마리가 있었는데 두 마리가 죽었으니 7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으니 나머지 오리들의 상심이 클까 싶어 겨울에 지내는 숙소로 일단 대피했다고 한다. 놀라운 건 사람들의 분노에 가득 찬 반응이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


나도 오리를 사랑하고 운전수가 너무나 원망스럽지만 규정속도를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할 방도가 없다는 경찰의 이야기도 이해가 된다. '운전 중 오리가 뛰어들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줄 것, 그렇지 않으면 징역 10년에 처한다.'같은 법규를 만들 수도 없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이 사회는 법이 없어도 당연하게 지켜야 하는 규범의 수준이 내가 있던 서울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기사에 따르면 오리가 한 번 길을 건널 때 사람처럼 똑바로 가지는 않기 때문에 9마리가 도로를 완전히 건너기 위해 15분 정도 소요되기도 한단다. 차가 한 번 서면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그 뒤로 차가 계속 밀리지만 아무도 경적을 울리거나 내려서 따지거나 오리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일이 없었다. 아니면 도로를 건너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만들거나 먹이를 스스로 찾을 필요 없도록 가공사료를 주는 방법도 있을 텐데 주민들은 오리들이 스스로 원하는 먹이를 선택하고 찾아갈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덕분에 오리가 뒤뚱거리며 도로를 건너는 모습을 나도 자주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은 자진해서 불편을 겪었다. 놀랍다. 


어떤 사람들은 오리가 죽었다고 너무 유난 떠는 게 아니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리에게 향한 관심이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에게도 당연히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을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예로, 이 지역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개인 차 없이 다니기 참 불편하다. 많은 이들이 제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를 탓하고 원망하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면 그 불만이 쏙 들어간다. 유모차, 휠체어, 목발 등 버스를 평소에 타고 다니기 힘들 것 같은 사람들이 버스에 타면 그들이 완전히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 운전기사는 차체를 내리고 자리를 만들고 안전점검을 한다. 때로 5분에서 10분까지도 소요된다. 하지만 아무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지 않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기다린다. 빨리 가는 것도 좋지만 같이 안전하게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보여주는 순간이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습관적으로 도로에 들어서기 전 꽤 오래 주춤하는데, 예전에 이태원 경리단길 골목에서 일방통행임에도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에 치일 뻔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차가 보행자를 발견하는 순간 속도를 줄이도록 되어있다. 단 한 번도 아직까지 내 앞을 쌩하고 지나가는 차 때문에 놀랄 일이 없었다. 같이 길을 건너던 할머니가 휠체어를 끄느라 아무리 오래 걸려도 운전수는 기다렸다. 할머니가 고맙다고 손을 흔들자 운전수도 같이 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사람들이 오리를 치고 그냥 가버린 운전수를 비난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앞을 살피지 못한 부주의도 있지만 이후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 비도덕성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이야기처럼 그는 한 푼도 범칙금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람도 급한 일이 있었겠지. 일부러 죽인 게 아니잖아.'라는 변명을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어쩔 수 없었어.'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길도 편하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번 주 토요일에 죽은 오리들을 위한 추모행사를 연다고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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