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ug 14. 2017

죽은 오리를 위한 사회

오리 추모식을 가다.

토요일 저녁 7시에 설리번 연못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아마도 지역 봉사자 중에 한 명이 제안해서 열리게 된 추모행사 소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라디오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작은 추모행사를 응원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데는 관심 없다가 오리 두 마리 죽은 걸로 유난 떤다는 비판 글을 올리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운전자를 지나치게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 모든 울렁임이 건강한 사회를 보여주는 거라 믿는다. 


어쨌든 나는 오리를 좋아했다. (저번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이 왜 '거위'를 '오리'라고 부르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서울에서 희고 큰 거위를 볼 일이 많이 없지 않은가. 한강을 오고 가는 '오리배'의 모델은 '거위'라는 걸 감안해서 오리를 통칭으로 쓰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의 이 철없는 마음을 십분 이해해주는 남편 덕분에 우리는 비 오는 토요일 저녁에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행사장에 도착했다. 


사고현장에 누군가 달아둔 꽃


평소에 거리를 걷다가 종종 골목길 표지판에 사진과 꽃을 달아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누군가 슬프게도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를 위로하고자 가족과 친구들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나처럼 그저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준다.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도 길을 건너기 전 좌우를 살피고 때로 형광색 깃발을 들고 길을 건너 운전자가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오리는 이름이 없었다. 두 마리가 죽어서 7마리가 되었다는 말과 '로버트와 막스가 죽었어.'라는 말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래서 다들 오리가족을 발견하면 수를 셌다.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원 투 쓰리 포 파이프 식스 세븐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다. 평소에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우산을 들고 나올 만큼 빗줄기가 눈 앞을 가렸다. 집에 누워 TV를 보다가 힘들게 몸을 일으켜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비 오는 토요일 저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궁금했다. 


  

6시 50분,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다들 근처에 사는지 편한 복장에 애완견도 데리고 나왔다. 크게 떠드는 사람들은 없었고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 사이로 빗소리만 주룩주룩 들렸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잔디밭에서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행사가 진행됐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지붕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진행자는 사람들이 더 가까이 오길 요청했지만 다들 조심스러운 마음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진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를 품고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운전자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내용의 기사가 떴다.


행사는 짧고 간결했다. 이 행사의 주최자가 사고 상황을 요약했고 다행히 3마리 중 한 마리는 큰 부상 없이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는 설명에선 다들 안도의 박수를 보냈다. 내가 멀찍이 떨어져 있어 목소리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이 사건이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순서는 기타 연주였다. 죽은 오리를 기리며 만든 곡인 만큼 기타 소리는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타고 잔잔히 흘렀다. 그리고 모두 함께 호수 한 바퀴를 빙 돌았다. 사고 현장을 다시 보고 남은 오리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행사였다.


지나가던 차도 속도를 줄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새로운 꽃이 달렸다.


사람들의 비난과 달리 오리를 차로 친 운전자는 꽤 패닉 상태에 빠졌었나 보다. 그는 현장을 뜨긴 했지만 저녁에 경찰서에 전화해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굉장히 당황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고의가 아닌 만큼 인터넷의 격앙된 분노를 조금 참아달라는 담당 경찰관의 말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가다 문득 캐나다에 오기 전 들었던 소식이 떠올랐다. 게임 업계의 크런치 모드와 포괄임금제, 과도한 업무시간의 이슈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알려졌다. 업계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일이 이제야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전까지는 그 이슈를 사회에 꺼내놓는 일이 힘들다. 방송사 신입 PD의 자살로 드라마 제작관행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업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화는 어렵다. 토요일 저녁에 오리 추모 행사에 참여하거나 옆 사람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기엔 모두에게 바쁜 일이 너무 많다.


'오리는 캐나다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였어.' 옆에서 잠잠히 있던 남편이 이야기했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 둘의 의지만으로 와서 살게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으니 아직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다행히 추모사를 하거나 인터뷰를 할 일은 없었지만 나에게 마이크가 온다면 오리에게 이런 인사를 남기고 싶다. 너는 이 지역 평화의 상징이었어. 앞으로도 더 그럴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 오리 뺑소니 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