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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읓 May 14. 2023

스이 우누카란 로, 홋카이도 (20)

나중에 또 봐요, 홋카이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홋카이도도 이제 얼마 안 있어 안녕이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아이누의 가계만을 좇으며 낯선 땅을 찾는 것은 다시없을 설렘이었다.

 

아이누의 역사를 몰랐더라면 홋카이도는 단지 일본을 이룬 4개의 큰 섬 중 하나이고, 눈과 자연, 온천의 고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홋카이도에는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아이누 민족의 역사가 서려 있었고, 과거 조선과 같이 일제의 수탈과 억압을 당한 피지배 민족 간 유대도 있었다. 이육사의 시 "편복"에서도 망해버린 조선과 아이누의 처지를 이르고 있다.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에서

다 썩은 들보라 무너진 성채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어둠의 왕자여!


...(중략)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을 노려도 봤을

너의 먼 조선(祖先)의 영화롭든 한 시절 역사도

이제는 아이누의 가계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엾은 박쥐여! 멸망하는 겨레여!


운명의 제단에 가늘게 타는 향불마자 꺼졌거든

그 많은 새즘생에 빌붙일 애교라도 가졌단 말가?

상금조처럼 고운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토막 꿈조차 못 꾸고 다시 동굴로 돌아가거니

가엾은 박쥐여! 검은 화석의 요정이여!

-이육사, '편복蝙蝠'


역사란 무엇인가? 다소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역사는 무언가가 현재의 모습으로 이루어지기까지 쌓인 이야기들이다. 역사는 사물에도 있고 동식물에도 있다. 모든 것에 깃들어 있음은 이런 면에서 마치 카무이와 닮은 점이 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인물이나 혹은 가상의 인물에까지 깊게 빠지곤 한다. 결국 지구의 수없이 많은 인간이란 종족 중 하나로 귀결되면서 어떤 한 사람 없이 죽고 못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더 깊숙이 매료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나온 서사를 알고 나서가 아닌가?

역사는 이 세상의 스토리텔링이다. 어떤 땅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곧 현재를 보듬는 것이고, 앞으로 쌓아나갈 미래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과거 없이는 아무것도 쌓아지지 않는다.


홋카이도는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여행지지만 아이누를 알기 위해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만화 "골든 카무이"의 영향으로, 이따금 아이누를 테마로 홋카이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도 한다. 니부타니 코탄이나 피리카 코탄을 사전 조사할 때는 국내 정보가 적었던 탓에 대부분 일본 정보와 구글 지도에만 기대서 찾아갔다. 언젠간 한국에서의 후기도 많이 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기회가 되어 또 홋카이도에 가게 된다면 다음에는 아사히카와가 있는 도북 지방을 찾아보고 싶다.


공항 입국심사대 앞의 가림막. 아이누 전통 문양이 눈에 들어온다.


우라라 녹차. 아이누어로 우라라(urar)는 안개를 뜻한다. 오른쪽은 아이누 전통 문양이 그려진 코카콜라 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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