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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읓 May 14. 2023

마지막 밤의 삿포로 (19)

스스키노 거리 

회전초밥집에서 계산하고 나서니 홋카이도 박물관까지 가기엔 어려운 시간대였다. 박물관은 4시 30분에 문을 닫는데, 지금 이곳에서 박물관까지 도착하면 4시였다. 점심을 안 먹고 갔으면 충분히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앞섰다. 하는 수 없이 삿포로 시내라도 더 관광하고 가기로 했다. 지하보도를 통해 오도리 공원 쪽에 있는 삿포로 TV타워로 발걸음을 향했다. 

흐린 날의 삿포로 TV타워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TV타워 안에는 각종 기념품 숍과 함께 꼭대기 층 전망대 관람료를 받고 있었다. 밤이었다면 야경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흐리고 비 오는 오후 시간대에 전망대를 올라가 볼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기념품 구경만 하기로 했다.

삿포로에 와서 확연히 느낀 것은 토마코마이 쪽을 벗어나서 삿포로로 올라오니까 그 많던 하스캅 제품들이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할 때 봤던 이로하스만 하스캅맛이 있을 뿐, 삿포로에서는 대부분 신선한 유제품을 특산물로 밀고 있었다. 

한국의 십원빵이 모티브인 10엔빵.

TV타워에서 나와 오도리 공원을 지나 숙소로 향했다. 타누키코지를 지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종종 손에 들고 가는 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자주 보던 십원빵이었다. 경주에서 언제부턴가 황남빵을 제치고 명물로 등극한 십원빵. 로열티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현지화가 된 십엔빵은 한국에서 상륙했음을 내세워 광고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돌 생일카페처럼 꾸며져 있던 카페에는 영사기로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틀어져 있었고, 메뉴판을 보니 김밥이나 양념치킨 같은 한국음식도 팔았다. 2013년 즈음 오사카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일본은 자문화로 뭉쳐 있던 나라였다. 자존감이 강한 일본은 무엇보다 자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문화가 들어설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날엔 한국 문화도 조금씩 꽃피고 있었기 때문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말차맛으로 주문했다. 가격은 500엔(약 한국 돈 5,000원)이었다. 액면가에 비해 비싼 건 다름없었다. 십엔빵엔 통용주화랑 똑같이 교토에 있는 뵤도인平等院의 봉황당鳳凰堂이 그려져 있었다. 갓 나와서 무지 뜨거웠고, 쌉싸름한 말차맛은 역시 맛있었다. 


숙소에서 한숨 돌리면서 오는 길에 산 간식들을 먹었다. 마지막 날인 만큼 아쉬운 마음에 다시 나와서 스스키노 거리를 찾았다.

밤의 스스키노 거리

밤에 찾은 스스키노는 빛나는 간판들로 번쩍였다. 사람들을 태운 노면전차는 사거리 한복판을 가로질러 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녔고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삿포로도 이제 마지막이었고, 마지막 날의 야경이었다. 





2023.04.07 가다

2023.05.02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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