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 같을 때가 있다. 무기력을 뒤로하고 노트북과 책을 챙겨서 급하게 집을 나왔다. 좋아하는 카페가 문을 닫아서 근처에 다른 카페에 왔다. 소금빵 맛집이다.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쓸 수가 없다. 왜 이러나. 쓰는 건 정말 좋아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읽는 것도 힘들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아마 외로워서 그런가 보다. 그렇다고 사람을 찾아 나서긴 싫다.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혼자 있으면 외롭다. 아주 편한 사람이 아니면 그렇다. 혼자가 더 편하다.
누군가 나를 특별하게 바라봐 주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건가. 모든 존재가 그런 거 아닐까. 길가에 돌멩이도 바라보고 이름 지어주고 관심 가지면 특별해지는 거 아닌가. 스스로 특별할 수 있나. 아무래도 혼자서는 특별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특별해지고 싶지? 관심을 받아본 적이 너무 없어서 그런가. 누가 나를 정의해 줬으면 좋겠다. 그때가 거의 유일하게 행복해지는 순간인 거 같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너는 무엇이야. 너는 나에게 무엇이야. 그 무엇이라 불리는 순간 나는 깨어나고 행복하다.
확실히 함께 하면 웃을 일이 더 많다. 혼자서는 웃을 일이 거의 없다. 옆테이블의 웃음소리가 더욱 나를 쓸쓸하게 만든다. 웃는 건 좋은 일이다. 웃으면 건강에도 좋다. 나는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대부분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한 건가.
이런 글이 써지는 건 좋지 않다. 다시 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고 돌아갈 수는 없다. 아주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다르게 살고 싶긴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정서적으로는 지금이 가장 낫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 어떤 패턴을 알고 나서 나는 조금은 안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믿는 것은 자연의 정화능력이다. 어떤 상처든 치유하는 자연의 속성.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내 아픔은 미미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기대서 상처가 점점 작아지길, 마치 사라진 것처럼 작아지길 바라는 것이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될 것 같다. 나도 은근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어쩌면 모두가 사실 그렇지 않을까. 아무 이야기든 하고 싶은데 멍청하게 보일까 봐, 이해 못 할까 봐, 한심하게 느껴질까 봐, 상대가 딴청 피우는 모습을 못 견뎌서 말을 못 하는 거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느낌은 굉장한 안정감과 따뜻함을 준다. 상담이라도 받고 싶은데 비싸서 좀 망설여진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속 시원하지는 않네. 백 퍼센트 솔직하지 못한 거 같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속을 좀 털어놓고 싶다. 처음 보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에게. 내 자의식을 내려놓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가능할 텐데. 전에 술 마실 적에, 새벽에 찾아간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모르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가 떠오르는데 너무 취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 같다. 지금은 술도 안 마시고 혼자이길 원하니 혼자인 거다. 이렇게 글을 쓰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