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차이
한계를 두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계속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멀쩡해서 문제인가. 그 생각도 물론 한다. 너무 제정신이라서 생으로 견디느라 힘든 거다. 그렇지만 난 정신을 놓고 싶지는 않다. 기쁨이든 괴로움이든 모든 감정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게 마음이 놓인다. 자의식이 강해서 남들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흐트러진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내려놓고 정신까지 잃은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많은 것들이 내 맘 같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관계는 특히 더 그런 거 같다. 집착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중심을 잘 못 잡으면 어느새 그 사람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리고 만다.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었을 뿐인데 그럴수록 점점 멀어지고 속상하고 상처받는 쪽은 언제나 더 많이 신경 쓰는 쪽이다. 그래서 혼자서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공허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채워지긴 하는 걸까.
어제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 말들을 들었다. 폭풍 같은 그 말은 장미의 가시처럼 뾰족하고 날카롭게 내 마음을 할퀴었다.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났고 아마 아물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다.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라 더 상처가 큰 거 같다. 말을 내뱉은 사람은 모르겠지.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그 사람은 나중에 말이 심했다고 사과했지만 이상하게도 사과를 받아도 마음이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는 내가 너무 감정적이고 극단적이라고 했다. 부담스럽다고. 그거 집착이라고. 에너지를 너무 한쪽에만 쏟고 있으니 그러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에너지를 더 쏟으라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정말 큰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그는 나에게 작은 에너지와 노력도 쓰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슬펐다. 나와 차이가 너무 커서. 그가 나에게 에너지를 더 쏟는 일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내 에너지를 조절해야 한다. 그에게 쏟던 에너지를 나에게 쏟으라는 말은 가슴 아프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다. 상처받고 아파하게 날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에게 내 소중한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나를 지켜야겠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쓰러 혼자 카페에 왔는데 동생을 제외하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가 편하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이들이 몇몇 있지만 요즘 일정이 안 맞아서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6월에는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마음을 준 이들에게 쏟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자기는 일이 우선이라는 그의 말이 또 아프게 와닿는다. 별수 있나.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 걸. 아 그만 생각하자. 이 와중에도 자꾸만 그를 생각하며 그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니 뭔가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신경 그만 쓰자.
소나기의 계절이다. 어제는 오후에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더니 오늘도 갑자기 비가 내리친다. 금방 그치겠지. 식물들과 땅은 시원한 비를 반길 것 같다. 이제 곧 6월이다.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푸른 이파리들이 가득한 초록의 향연도 좋고 풀내음 가득 맡는 것도 좋고 쨍한 햇빛은 상큼하고 가끔 오는 비는 운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수박도 많이 먹을 수 있고 싫어하는 추위도 별로 느낄 일이 없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 보자. 상처 주지 말고 받지도 말고 살자. 그게 쉽지 않겠지만 마음먹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그 정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줄여 나가야 한다. 기대도, 관심도, 사랑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