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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삶

커피와 샌드위치와 글

by 어효선

여행하듯이 살고 싶었다. 아무것도 얽매이는 것 없이, 가고 싶은 곳에 가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샌드위치와 음료를 마시며… 매여 있는 것을 싫어했다. 책상에 앉아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것은 무척 답답하고 긴장됐다. 지금 누리는 자유가 좋았다. 그러나 휴가 같은 일상은 곧 끝나가고 있다. 돈이 다 떨어져 가고 있다. 곧 또다시 일을 구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책을 사고, 안락함이 보장된 일상을 보내기 위해…

나이가 들수록 가치관이 변한 건지 양심이 무뎌진 건지 모르겠다. 동생은 나의 양심을 되살리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양심이 없어졌나. 예전보단 죄책감을 덜 느끼는 거 같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끄럽고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이런 감정을 느낀 지 오래되어 덤덤한 것처럼 보일 뿐, 진짜 그런 건 아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하프 마라톤에 나간다. 달린다고 뭐가 달라지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달릴 때 힘들다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달릴 때 거의 항상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달리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사람이 되어있길. 몸도 마음도.

나는 지금 무너져 있나. 무너지고 있나. 무너지기 전인가.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 버린 거 같아서 안타깝다. 그게 온전히 내 잘못만은 아니지만. 나의 삶이, 내가 만난 사람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남 탓하고 싶은 건 아니고 정말 그렇다. 난 이런 삶을,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원하고 있다. 내가 이상해진 건지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마음은 꼭 소설에서 온갖 풍파를 겪고 못된 짓을 일삼다가 처절하게 몰락하기 직전의 주인공 같다. 사실은 난 이게 옳은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게 맞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 마음은 녹은 캐러멜처럼 보잘것없이 너무 물렁하다. 결국엔 끝날 것이다. 마음이 좀 단단해지길 바랄 뿐이다.

누가 자꾸 나를 혼내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는 아니지만. 그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금방이라도 그가 대형 골프채를 들고 와서 ‘죽을 때까지 너를 흠씬 두들겨 패 줄 거야’라는 말을 할 것만 같다.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두렵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의 두려움은 종종 이런 어리석은 망상으로부터 시작되고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도망치고 싶다. 한 번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가 나보고 함께 도망치자고 하면 나는 금세 짐보따리를 들고 따라나설 것이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걸까? 내가 저질러 온 무수한 잘못들로부터? 나와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은 사람도 한 명도 없다.

다 그만두고 싶다. 그를 보는 것도, 달리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아니, 계속하고 싶다. 삶이 끝날 때까지. 나는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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