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 같은 여름이 왔다. 엄마 생신은 7월이다. 제일 친한 친구 생일도 7월이다. 나는 여름이 좋다. 더운 건 싫지만 여름의 분위기가 좋다. 어릴 땐 집 앞 해수욕장에 있는 미니 바이킹을 자주 탔다. 한밤의 폭죽 소리와 불빛. 파도 소리. 낮에는 바다에서 자주 놀았다. 발가락을 스치는 조개들이 많았다. 잠수해서 잔뜩 잡은 조개들로 조갯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바다 근처에 파는 핫도그가 생각난다. 맛있었는데.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해수욕장에서 옥수수를 파셨다. 그 더운 날. 할머니 옥수수가 제일 맛있다. 지금은 먹을 수 없지만. 대학 때는 여름방학 때 집 앞 해수욕장에서 주차장 알바, 샤워장 알바, 방송안내 알바를 했다. 태양은 모든 걸 녹여버릴 듯 이글거렸다. 그 열기에 얼어 있던 나의 마음도 조금은 녹지 않을까 싶었다.
그제부터 에어컨을 틀었다. 무더위에 실내에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커피와 빵을 먹고 뒹굴거리며 챗지피티가 추천해 준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나 몸상태가 나아졌다. 살기 막막하다는 생각도 줄어들었다.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싶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찾아오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땐 끔찍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 또 살아가는 게 힘들다고 징징댈 테지.
여름에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좋다. 잔을 들고 살짝 흔들면 달그락거리는 얼음 부딪히는 소리. 컵을 쥔 손바닥에 느껴지는 차가운 촉감. 그리고 수박. 나는 수박을 좋아한다. 그리고 팥빙수.
그 사람과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열망으로, 혹은 핑계로 여름을 기다리고, 걱정을 이긴 설렘이 떠오른다. 행복한 여름이었다. 그와 먹은 물냉면. 손길. 지는 태양 빛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잠든 그의 옆모습. 가을엔 약속대로 헤어졌다. 얼마 못 가 다시 만났지만. 그런 기억들이 이러저러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름날. 여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