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집에 있으면 자꾸 잠만 자게 돼서 좋아하는 카페에 오랜만에 왔다. 드립 커피 맛이 좋다. 요즘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졸린 지 모르겠다. 계속 잠이 온다. 잠을 오래 잤는데도 그렇다. 생리전증후군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몸에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검사를 해봐야겠다. 술은 끊은 지 5년이 넘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건강해지는 건 아닌 거 같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고 먹는 것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삼포 집에 있을 땐 엄마가 맛있는 반찬과 따뜻한 밥을 매일 해 주셨다. 엄마께 감사하다. 집을 나와 독립하니 밥을 잘 안 해 먹는다. 아침엔 계란프라이, 샐러드, 빵, 시리얼을 먹는다.
상반기는 푹 쉬었고 이제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찾아보고 있는데 청소년상담사 2급으로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취업할 수 있는데 내 발로 나온 곳이라 다시 들어가기가 그렇고 그 외에는 취업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대학원은 가고 싶지 않고 한국상담심리학회 자격증을 따려면 또 돈 몇 백 들고 1~2년 걸릴 텐데… 정말 상담을 그만두고 다른 직종으로 옮겨야 하나. 상담이 잘 맞는 거 같긴 한데 길이 좁은 것 같다. 상담이 필요한 심리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은 거 같은데 상담할 수 있는 길이 더 넓고 다양해지면 좋겠다. 50분에 3만 원 정도로 개인상담을 해볼까도 했는데 쟁쟁한 상담사들이 많아서 잘 매칭이 되지 않는다. (심리상담 문의 대환영: 010-8256-5446 어효선)
그래도 초심 상담사로서 운 좋게 청소년동반자 전일제로 일하며 2년 9개월 동안 100 사례가 넘는 청소년 상담을 했다. 상담에 대해 실무적으로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대학원에 가면 더 심층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영어가 안 돼서 면접에서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가기 쉬운 야간 대학원도 있지만 학위만을 위한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보니 지금 내 자격으로는 한계가 많다.
신님이 나에게 다른 재능을 좀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생에 태어나면 글쓰기나 연기를 하거나 노래를 하고 싶다.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잘하고 싶다. 이번 생은 상담을 하며 선업도 쌓고 고생은 하겠지만 보람차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것도 어렵네. 사실 글쓰기, 연기, 노래 다 지금도 하면 하는데 돈을 못 번다. 상담 일은 선업을 쌓고 싶은 마음과 돈을 벌고 싶은 마음 둘 다 있다. 내가 쓰일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건강한 몸뚱어리가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늦은 나이에도 꿈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 허성태도 늦은 나이에 오디션에 참가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노력하면 그런 기회도 오는 것 같다. 나도 한 때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번 생에는 포기하기로 했다. 동생이 소소하게 독립영화를 찍게 된다면 카메오라도 출연시켜 달라고 졸라봐야겠다.
지금은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여유를 가지고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사부작사부작해 나가려고 한다. 많이 쉬어서 힘이 생긴 것 같다. 일 할 땐 하고 쉴 땐 쉬어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푹 쉴 수가 없어서 힘들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밖에는 이렇게 길게 쉬기 어려우니, 평소에 에너지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 9시부터 6시까지 일 해야 하니 아침, 점심, 저녁 내내 일을 해야 한다. 나는 그 기간을 언제나 오래 버티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