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삶
일자리 때문에 지금 사는 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한 직장에 오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한 곳에서 오래 버티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계약직도 급여가 너무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면 좋게 생각한다. 그런데 재취업을 할 때 각종 서류들과 이력서를 다시 써야 하는 게 참 번거롭고 어렵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 자리가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써야지.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사람들은 잘 맞을지, 일은 잘 해낼 수 있을지,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동생이랑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도 슬프다. 각자의 삶 속에서 적응해서 잘 살아가겠지만. 돈을 열심히 벌고 휴가를 맞춰서 함께 여행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인연을 새로 맺는 것도 맺은 인연과 이별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힘들다.
삼십 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가정을 꾸리고 싶은 조급하고 막연한 바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그렇다. 안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이 꼭 나에게 내가 믿고 있는 안정감을 가져다주진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한 때에 나에게 다가오겠지. 그렇지 않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인연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외로움, 공허함이 커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그 마음을 채워간다면 꼭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의 문은 열어놓고 흘러가는 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날은 아직 덥다. 매미도 아직 시끄럽게 울고 있다. 계절의 흐름과 나의 흐름이 맞물려서 흘러가겠지. 나이를 먹고 계절이 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난 이런 자연스러움이 좋다.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커다란 힘이 있다. 거의 유일하게 그것에는 기댈 수 있다. 이처럼 변함없고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은 없다. 배신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자연에 기댈 때만큼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원체 불안이 높은 사람이다. 걱정도 많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어떤 날씨에도 흔들림 없이 우뚝 서있는 나무처럼 살고 싶은데 나는 뿌리가 너무 약했다. 내 뿌리에 맞는 이파리를 위해 가지치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파리만 무성하고 지탱하는 힘이 약하면 꺾여버릴지도 모른다. 원하는 거, 바라는 게 참 많은 아이였다. 지금은 욕심을 내려놓고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가끔 불만족스러움이 올라와서 슬프고 무기력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곧 다시 감사함을 떠올린다.
아, 여름이 가고 있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부모님도 이번 주만 지나면 한숨 돌리실 수 있겠다. 쉰다는 핑계로 일도 못 도와드렸는데. 죄송하다. 좀 푹 쉬시면 좋겠다. 번 돈으로 가족들끼리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데도 놀러 가면 좋겠다. 여유가 있을까. 일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면 주말밖에 시간이 없다. 그 마저도 주말에 당직이면 시간이 없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내가 일을 다시 한다고 하면 한시름 놓으실 거다. 경제적인 독립이 중요하다. 복권이 당첨되면 참 좋겠지만 그전까진 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