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나가! 알량한 자존심과 마음 한 켠 따뜻함의 기묘한 공존
“와~ 오늘 머리며 옷이며 왜 이렇게 힘을 줬어? 이렇게 하고 친구 만나러 갔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토요일 저녁, 대학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의 만남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남자친구를 불러냈다. 남자친구는 횡단보도 근처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가볍게 친구 만나러 다녀오는 것인데도 엄청나게 꾸몄다는 말을 건넸다. 사실 그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둘 다 프리랜서인 우리는 일주일에도 3번 이상 만나며 카페에서 함께 작업을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데이트가 아니라 ‘일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가볍고 또 편한 차림으로 나가곤 했다. 어떤 날은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굽 있는 구두에 포멀한 자켓을 입고 백팩이 아닌 조그마한 손가방을 들고 머리까지 한껏 볶아댄 모습으로 나타나니 의외일 수밖에.
한창 저녁 먹을 시간이었던지라 만나자마자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계절인지라 뜨끈한 국물이 있는 식사가 고팠다. 식사 후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너무 따뜻한 식사를 했다며 입가심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마침 일전에 친구에게 받은 기프티콘 사용기간 만료일이 다 되어가는지라 오랜만에 31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 가서 3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골라들고 아직도 에어컨이 나오는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창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먹고 있는데, 문득 아까 나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멋을 잔뜩 부렸냐는 듯이 말했던 그의 속뜻이 궁금해졌다.
“근데 내가 오늘 꾸미고 나온 게 그렇게 의외였어? 아니 보자마자 그렇게 말하니까~ 일할 때면 몰라도 같이 미술관 가거나 데이트 하러 가는 날이면 그래도 꾸민다고 꾸미는데… 평소에 일하려고 만날 때는 노는 거 아니니까 당연히 편한 옷 입는거고! 내가 평소에도 좀 신경 썼으면 하는 거야?”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내가 남자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남자들은 친구들 만날 때 그냥 깨끗하게 씻고 깔끔하게만 하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너 보면 여자들은 남자친구 만나는 것 못지 않게, 특히 동성 친구들 만날 때 엄청 더 신경 쓰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런 심리가 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
대답을 듣자마자 ‘아, 남자들이 여자들을 볼 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전혀 다른 종인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남자와 여자이니, 이런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런데 정말로 생각해보면 나는 남, 녀 친구들 모두 함께 만나는 모임 자리나 남자친구를 만날 때보다 오랜만에 보는 여자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정말 더 공을 쏟는 것 같았다. 약속이 정해지면 며칠 전부터 어떤 옷을 입을 지 미리 코디 해보기도 하고, 신발과 가방까지 꼼꼼하게 챙겨 둔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출발하기 최소 2, 3시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꼼꼼하게 화장을 하고 평소 귀찮아서 질끈 묶거나 그냥 풀어헤치고 다니는 머리도 정성을 다해 고데기로 손질한다.
왜지? 정말 왜, 나는 왜 편하다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이렇게 편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나에게 있어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마치 친정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직 미혼이라 엄마네 집 가는 것을 ‘친정에 간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독립해서 혼자 사는 나에게 한 달에 한 번 본가에 가는 것은 마치 친정에 가는 느낌이다. 기혼자들이 친정에 갈 때면 혹시라도 나의 못난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가 마음 아파 하실까 걱정되어 잘 차려 입고 가는 것처럼 나 또한 본가에 갈 때면 유독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한 번은 일에 치여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몇 달 전부터 예정된 가족 여행을 미룰 수 없어 다소 편안한 옷차림으로 본가로 향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도 몰랐는데 바지 주머니 솔기 한 쪽이 살짝 뜯어져 있었고, 설상가상 바지 안쪽으로 박음질 되어 있던 밑단도 너덜거리고 있었나보다. 엄마는 집에 도착한 나를 위 아래로 한 번 쳐다보시더니 바로 반짇고리를 가지고 나오셔서 고장난 부분들을 꿰매주셨다. 바느질을 하시던 엄마는 괜히 머쓱해 할 나를 배려해서 그러셨는지, 아무렇지 않은 말투와 표정으로 덤덤하게 “용돈 좀 줘? 아님 옷 좀 사줄까? 왜 뜯어진 옷을 입고 다니고 있어”라며 말을 건네셨다. 하지만 그 무던한 표정과 말투에서 나에 대한 안쓰러움과 걱정이 느껴졌고, ‘아 엄마 집에 올 때는 좀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품에서 떠난 자식, 바깥에서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데 한 달에 한 번 보는 모습이 덜떨어진 모습이라면, 나 같아도 신경 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친구를 만날 때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친한 친구일 수록 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더 어릴 때는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다 보여줬었지만 나이가 드니 혹시라도 내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절대 외면할 친구들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가볍게 만나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하는 것도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함부로 이야기 꺼내지 못하거나 서로 나서서 밥 사주겠다고 할 친구들이라는 것 또한 잘 알기 때문이리라. 모르는 사람들 혹은 일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잘 입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자리에 잘 차려 입고 가는 것은 깔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알량한 자존심과 욕망이 근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한 사람들, 마음으로부터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차려 입고 나가는 것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합적인 의도 속에는 첫째, 사랑하는 이들에게 부담과 안쓰러움이라는 짐을 지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실제로 내가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고 하더라도), 둘째, 내가 여유 있는 경우에는 나도 이제 친구들에게 마음 놓고 밥도 사고 커피도 사줄 수 있는 정도로, 한 인간으로서의 구실 정도는 하고 살고 있음을 암묵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솔직히 남자인 친구들은 내가 어떻게 입고 다니든 그것을 딱히 나의 상황과 결부시키지 않지만, 여자인 친구들은 외적인 것으로도 나의 상황을 가늠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동성 친구를 만날 때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내가 동성 친구를 만날 때 훨씬 더 꾸미고 나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러나 저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주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욕망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이전에는 그러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기를 바라면서도, 누군가 나를 조금이라도 칭찬하거나 치켜세우면 ‘혹시 내가 은연 중에라도 잘난 척을 했었나. 저 사람이 속으로는 날 재수없다고 생각하려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기만의 의도가 있지 않은 이상, 이 또한 나의 노력의 결과물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욕망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만남에 옷을 잘 차려 입고 가는 것 또한 앞서 여러 가지로 내 생각을 말했지만, 결국엔 ‘나 요즘 잘 나가’를 인정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주변인들을 경쟁자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인정 받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친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마치 기혼자가 친정에 한껏 꾸미고 감으로써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걱정을 덜어주는 것과 같으면서도 동시에 나와 나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솔직한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때 “너무 꾸민 것 아니야?”라는 핀잔을 들어도 괜찮다. 정말로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의도를 품고 작정하고 꾸민 게 맞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