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나의 생각과 이야기의 8할 이상은 타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진로 문제가 되었든 취향의 문제가 되었든 ‘좋아하는 것’으로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것과 노력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민도 한 지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몇 살 어린 동생으로, 간혹 연락을 하고 안부가 궁금해질 때쯤 한 번씩 보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내 꿈이자 목표라고 생각하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전속력으로 계속 달리다가 힘이 달려서 속력을 조금 줄이며 주변을 살펴보니 ‘이게 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천직이라고 여기며, 누가 봐도 힘들어 할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던지라 그녀의 고백에 내심 놀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내색할 수 없어 차분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현재 그녀의 상태는 말 그대로 ‘슬럼프’에 빠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잠시 이 일에서 벗어나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만 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지며 꼭 심각하고 진지한 것들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차피 A를 해봐도 재미가 없을 것 같고, B는 시간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비용 때문에 안 될 것 같고, C는 안 해봐도 내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라는 대답을 해왔다. 이렇게 돌아온 대답을 곰곰히 듣고 있다보니, 조금씩 화가 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왜 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만 해?
한 번도 A, B, C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도, 실제로 저것들을 해보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재미 없을 것 같고 안 좋아할 것 같다고 단언할 수 있어?”
잘 안다, 어쩌면 난 지금 한 사람에게 굉장히 무례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용기 없고 무기력한 모습이 과거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 버럭 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녀에게 했던 ‘노력’이라는 말은, 특히 요즘 들어 사용하기 ‘곤란해졌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부정적인 의미로 변모(‘노오력’)하게 된 단어다. 아마 노력하고 안간힘을 써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외부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서부터 비롯된 것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는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다. 삶 자체가 안간힘을 쓰면서 이어나가는 것인데, 그 누구 하나 편하게 사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삶과 노력을 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젊은 꼰대’처럼 여겨진다 하더라도 나는 이 단어를 쓰지 않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나도, 내게 고민을 털어 놓은 친한 동생도, 요즘의 많은 사람들도 모두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을 아주 쉬운 일, 거저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여행을 직접 가봐야 여행이 좋으면 좋은 이유를, 싫으면 싫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영어 공부도 1:1 과외든 학원이든 독학이든 배우려고 시도하고 노력 해봐야 내가 언어에 소질이 있어서 잘 하는지, 소질은 없지만 재미를 느껴 열심히 하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지, 소질도 재미도 뭣도 없어서 언어에는 영 젬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지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반박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 말고도 살면서 해야될 게 산더미 같이 많은데 어떻게 매번 다 해보고 결정할 수 있냐고, 돈과 시간도 무시 못 할텐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말도 일리는 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제한된 금전 상황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다 해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위의 친한 동생 케이스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들거나 슬럼프가 깊게 올 정도로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고민에 빠져있다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해볼 적극적인 노력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내가 이 일 밖에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일에 대한 경험이 미천한 경우에는 더더욱 다양한 경험을 통한 결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나 또한 고등학교 때까지 한 길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꿈이고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아주 먼데, 바로 ‘의사’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매우 불행하게도, 성적이 목표와는 괴리가 매우 커서 객관적인 이유로 인해 꿈이 좌절되었다. 한 번도 의사 외에 다른 직업을 꿈꿔 본 적이 없는 나는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고 목표도 꿈도 없이 하루 하루 그저 흘려보내기 바빴다. 의도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은 아니었지만, 목표가 없으니 몰두할 대상이 없었고 이내 심심해진 나는 친구 따라서든 그냥 혼자서 하든 무언가를 자꾸 했었던 것 같다. ‘도전’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는 않겠지만, 취미 생활이든 특이한 알바든 동아리 활동이든 뭐든 나의 심심함을 채워주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한 번씩은 시도해봤다. 많은 것들을 시도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심심함’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대부분 글쓰기와 관련된 것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어쨌든 글 쓰는 것으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 때의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지 못했더라면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지, 직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지, 어떤 글을 잘 쓰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좋아하는 것, 목표로 삼고 나아가야 할 것, 취향 등에 대해서 꽤나 긴 시간을 고민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긴 여행 중이다. 내 인생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잘난 듯 이야기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창피하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1차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이것의 연장선상인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머릿속으로만 나 자신을 쉽게 생각하고 단정짓기보다는, 어쨌든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부정적인 존재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게 왜 싫어?”라고 물어보면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어”라며 여러 가지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하지만 “이게 왜 좋아?”라고 물어보면 “그냥~ 그냥 좋으니까”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일까, 많은 경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는 적절한 노력이나 시간과 비용의 투자를 꺼리거나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먹고 사는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찾는 것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 나가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삶, 직업, 자아 실현, 취향 등의 단어로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저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하다. 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한 노력과 투자에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말자. 적어도 나에게 있어 나 자신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