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쉽게 내비추면 상대도 나를 쉽게 대한다.
“너 어릴 때 어찌나 키우기가 힘들던지… 애기 때는 안고 있다가 밤에 좀 자려고 내려놓으면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선 이불에 등 닿자마자 자지러지게 울고. 너 이마에 상처도 그때 발버둥치면서 울다가 식탁에 있던 분유통 떨어져서 생긴 거잖아. 아직도 그 상처만 보면 속이 다 상한다.”
앞머리를 자르고 온 나를 보면 엄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다. 엄마 말씀처럼 내 이마에는 상처가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 찍은 사진을 보면 항상 이마 한쪽에 빨간 자국이 있다. 다 자랄 때까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만 상처는 중, 고등학생 시기를 거치면서 뭔지 모를 이유로 서서히 옅어졌고, 지금은 화장을 하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어릴 때 본인이 딸을 제대로 케어를 하지 못해서 생긴 상처를 내가 아직도 신경 쓰는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유독 내 앞머리만 보면 한 마디씩 하시곤 했다. 나에게는 이제 더이상 신경도 쓰이지 않는 상처이고, 앞머리는 온전히 ‘스타일링’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엄마의 미안함에 이어 곧바로 나의 유별남에 대한 질타가 터져나온다.
“다 네가 유독 별나서 그런 거 아니야!”
나의 유별남, 독특함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 시작되면 엄마는 이틀 정도는 숨도 안 쉬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니 굳이 엄마에게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아도 내가 기억하기에도 나는 가리는게 많았고 행동이 별났다. 더러운 걸 절대 참지 못해서 옷에 김칫국물 한 방울이라도 튀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옷 전부를 새로 갈아입어야 했다. 가족끼리 바다로 놀러가면 한창 물에서 재미있게 놀다가도 집에 갈 때가 되어서 모래사장으로 나오면, 젖은 발바닥에 모래가 묻어 까끌거리는 것을 참지 못해 한 발자국 걷고 발 닦고, 한 발자국 걷고 발 닦고를 반복한 나머지 이를 보다 못한 아빠가 나를 업고 차까지 모셔가곤 했다. 그렇다면 행동만 까다로웠느냐? 노! 입맛도 굉장히 까다로웠고 지금도 까다롭다. 식감을 중요시 하고 물컹거리는 것, 비린 것을 먹지 못해서 해산물이라고는 바싹 구운 생선의 흰살 부분만 먹을 수 있고 미역국도 일반 미역으로 끓인 것은 먹지 못한다. 비린 것에 대한 민감도가 너무 높아서 해녀이신 큰어머니가 직접 따서 말린 후 매년 보내주시는 미역으로 꼭 우리 엄마가 직접 끓인 미역국이어야만 먹을 수 있다. 스스로도 이렇게 살아오는 것이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불편한 점이 많지만, 직접 느껴보지 못하기 때문에 딸의 땡깡과 까탈스러움을 지레짐작으로 알아차리면서 키워내야 했을 우리 엄마 아빠는 얼마나 고생스러우셨을지…
그래도 자라면서 사회 안에서의 암묵적인 규칙들과 시선들 때문에 억지로 많은 것들을 고쳐내긴 했다. 그럼에도 입맛은 절대 바뀌지 않아 여전히 고생 중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경우가 많다(특히 나와 만남을 가질 때 해산물을 잘 못 먹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나 때문에 많은 것을 양보해주는 친구들, 지인들에게 특히 고맙고 미안하다). 내일 모레 서른이 다 되어가는 딸자식이 여전히 까다로운 입맛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는 엄마는 엄마 친구들을 만날 때 꼭 나를 두고 하소연을 하시곤 한다. 그 날도 우리 집에 놀러오신 엄마 친구분들에게 나를 인사시키며 똑같은 레퍼토리의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똑같이 엄마 친구분들의 똑같은 대답이 이어지리라 생각하고 있던 중, 의외의 말씀이 귓전을 강타했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가려 먹기도 하고 고생도 덜 해보고 그래야 결혼해서도 대접 받고 살아. 예쁨은 못 받아도 어려운 며느리 되어야 고생 안 해~ 그니까 자기 딸내미는 고생 안 하고 살 거야. 나는 어렸을 때 한창 나이에 시집 와서 가리는 것 없이 주면 다 잘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그러고 살다보니 시댁 식구며 남편이며 애들까지 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접 안 해주더라고. 여자 팔자, 사랑 받고 대접 받으면서 살려면 자기 딸내미처럼 까다로운게 차라리 나아!”
엥?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 나는 지금까지 나의 까탈스러움을 잔소리로 꾸짖는 엄마와 이모들의 말만 들어왔지, 이렇게 내 행동거지와 습관, 취향을 옹호해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너무 벙쪄서 처음에는 이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 이렇게 별나게 굴면 사랑 못 받아! 아무거나 두루 두루 잘 먹고 복스럽게 먹어야 사람들이 좋게 보지, 이것 저것 골라먹고 그렇게 깨작거리고 새 모이 만큼 조금 먹고 그러면 안돼!”라며 나를 고쳐내라는 말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엄마 친구분의 말씀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었던 지도 벌써 5년이 넘었고, 그때보다 좀 더 살아보니 이제는 엄마 친구분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까다롭고 아무거나 먹지 않고 뭐 하나 고르거나 어떤 행동 하나 할 때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니 주변에서도 쉽게 보지 않고 막 대하지 않고 더 챙겨주더라. 그렇다고 뭐든지 복스럽게 잘 먹고 까탈스럽지 않고 유순한 사람들이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까다롭게 사는 게 무조건 미움 받는 일은 아니더라는 말이다.
물론 내가 운이 좋아 주변에 “넌 해산물 못 먹는다고 했지? 그럼 초밥 말고 파스타 먹으러 갈까?”, “넌 원래 밥 엄청 천천히 먹잖아~ 우리가 기다려줄게. 천천히 먹어”라고 먼저 물어봐주고 기다려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도 사회생활 하면서 비교적 편하게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겪어본 결과, 무조건 다 ok라고 하고 무던하게 받아들이면 “쟤는 다 괜찮다고 하니까 이것도 괜찮을 거야. 굳이 안 물어봐도 될 걸?”이라고 나를 편하게, 가볍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점에 서운함을 느껴 한 번쯤 발끈하면 “평소에는 다 괜찮다고 하더니 왜 그래?”라며 오히려 이상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은 나 안 괜찮은데…”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아마 엄마 친구분도 이런 뜻에서 조금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더 좋다고 말씀하신게 아닐까? ‘여자로서’ 사랑 받기 위해서는 까탈 부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대접 받고 또 막 대해도 되는 쉬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조금 까다로운 사람처럼 내비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를 대접해주지 않고 “다 괜찮아”라고 하는데, 남이 나를 나보다 더 대접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 아닐까? 이런 말이 서운하고 억울하고 뭐 같고 공감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이렇게 불만스러우면 바꾸면 될 일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의 생각을 조금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더욱 대접해주고 나를 더욱 존중하고 나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져보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그렇다고 생트집을 잡는 갑질 같은 요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장할 것은 주장해보는 것이다. 이런 당당하고 가끔은 까다로워보이는 모습이 처음에는 나도 낯설고 남들도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첫 고비만 넘기면 어느새 당당함은 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것이고, 이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도 분명 보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접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내가 진짜 공주가 아니어도, 돈 많은 부잣집 사모님이 아니어도 뭐 어떤가? 그런 ‘척’을 하면서 당당하게 행동하면 그게 바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즉,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때론 ‘척’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