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소회

엄마는 딸에게 설거지를 시키지 않았다.

시킨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노 여사는 왜 그랬을까?

by 푸들

“엄마 없을 때는 가스불에 손도 대지 마! 여자는 몸에 흉 있으면 안돼. 특히 화상 흉터는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까.”


“냅둬, 냅둬. 설거지 엄마가 할게. 어차피 시집 가면 안 하고 싶어도, 하기 싫어도 실컷 하니까.”


“너 어깨 아파서 병원 다닌다며~ 이 정도는 엄마가 충분히 들어. 엄마 힘 장사다?”



엄마는 유독 딸에게 집안일을 잘 시키지 않았다. 굳이 도와달라고 한다면 청소기 돌리기나 다 된 빨래 널기 정도? 항상 엄마가 다 해 놓은 일에 숟가락 하나 살포시 올리는 정도다. 엄마랑 같이 살 때는 이마저도 귀찮았었다. 하지만 20대의 딱 가운데, 25살에 독립을 하면서 온갖 집안일을 혼자 하다보니 일 다니며 집안일까지 했을 엄마의 노고가 크게 와닿았다. 아, 나란 불효년…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이틀 정도 본가에 갈 때만이라도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오랜만에 온 딸에게 이것저것 해서 먹인다며, 갈 때 싸갈 밑반찬을 만든다며 홀로 분주했고 나에게는 그 어떤 것 하나도 시키지 않았다. 도와주겠다며 소매 걷어올릴 때마다 엄마는 “할 일 없으면 똘이 산책이나 시켜주던지!”라며 온 몸으로 나를 밀어냈다. 도대체 엄마는 왜 그랬을까?




“엄마, 내가 설거지 하는 게 못 미더워? 나도 이제 잘해~ 기름기 있는 것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세제 사용해서 뽀득뽀득 닦아내고!”


“그냥 엄마가 하는 게 편해~ 그리고 너 어차피 시집 가면 하기 싫어도 실~~~컷 할 텐데, 왜 벌써부터 집안일 하고 싶어서 난리야?”


“아니, 엄마 힘들까봐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지. 그리고 결혼하면 남편이랑 나눠서 해야지, 내가 왜 혼자 다 해? 나 혼자 다 할 것 같으면 그냥 나도 공평하게 안 해버리고 말지!”


“으이구,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눈 앞에 옷가지며 쓰레기며 굴러다니는데 깔끔 떠는 네가 그걸 잘도 보고 있겠다! 그리고 너라도 안 치우면 뭐, 쓰레기장 안에서 살래?”


“아 몰라 몰라~ 어쨌든 결혼은 결혼이고... 어차피 나도 내 집 가면 빨래, 설거지, 청소 다 하니까, 집에 왔을 때만이라도 엄마 좀 도와주겠다는데 엄마가 한사코 말리니까 그렇지.”


“됐어 됐어~ 그냥 엄마가 하는 게 편해. 그냥 내버려두고 저리 가.”


집안일을 앞에 두고 오가는 모녀의 대화는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로 진행된다(이 대화에 아빠와 남동생은 마치 모르는 타인 간 대화인 것처럼 관심도 없거니와 절대 끼어드는 법이 없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다는 말과 행동 속에는 엄마 자신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이 투영 되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엄마는 6남매 중 셋째이고, 딸 중에서는 둘째다. 엄마의 언니, 즉 큰이모는 어렸을 때부터 아팠기 때문에 엄마가 장녀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라는 과정에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 하기 싫은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일상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의 무릎에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중학생 때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갔다가 실수로 도끼를 놓쳐 본인의 무릎을 찍어 패인 상처가 남아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당연했고,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여자이자 장녀인 엄마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외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 집안에 보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한 문단으로 엄마의 역사를 설명했지만, 엄마는 장녀 역할을 하며 살아오면서 겪고 싶지 않은 일,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많이 겪어왔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내 딸에게만큼은 이런 것들이 유전처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바란 듯 하다. 그래서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면서까지 대학교 등록금을 내주시고, 빨리 취직해서 돈 벌지 않아도 된다며 대학원 진학까지 응원 해주셨던 것이리라.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삐딱하고 유별난 삶을 살아가는 딸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그 어떤 간섭과 잔소리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리라. 어차피 시집 가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집안일, 조금이라도 늦게 시작하라고, 조금이라도 늦게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나를 밀어내고 또 밀어냈던 것이리라.



엄마는 어두운 곳에서 꼼짝 않고 2시간 가량 앉아있어야 하는 영화관 체질이 아니라 명절 때 가족끼리 영화 보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 내 목표였던 ‘엄마랑 영화관에서 <82년생 김지영> 보기’는 달성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 집에서라도 엄마와 꼭 여유를 두고 엄마가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 한 잔 하며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여자로서의 우리 엄마, (엄마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본명은 적지 않겠지만…) ‘노 여사’를 좀 더 이해하고 싶다.


엄마! 우리 조금 있으면 만난 지 30년인데, 아직도 좀 낯가리는 것 같아?
내가 좀 더 다가가 볼게, 엄마의 이야기 좀 들려줘.
너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노 여사를 알아가고 싶어 졌거든.
엄마 어릴 때 꿈은 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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