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소회

엄마는 내 영웅이고 난 그녀처럼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책임진다는 행위의 숭고함 그리고 용기

by 푸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마주한 사람의 어깨는 어쩌자고 이다지도 작고 초라할까?
짓눌린 마음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의 심정을, 본인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어떤 강력한 힘의 의지에 의해 불행 안에 갇힌 사람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통화였다. 엄마는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더운데 땀 많이 흘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지 등 계속 질문만 했고 나는 다 괜찮다며 기계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게 통화가 이어지던 중, 나와 마찬가지로 직장 때문에 독립해서 자취하고 있는 남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아들인지라 딸만큼 서글서글 하거나 다정스럽지 못한 점이 엄마에겐 못마땅 했나 보다.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딸에게 털어놓던 엄마는 갑자기 “이놈의 자식은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어디가 아프냐, 괜찮냐 같은 말 한 마디도 안 해!”라며 불쑥 올라오는 울컥함을 내뱉는 것 아닌가? 엄마는 스스로 말해놓고도 본인의 대사에 당황스러워 했고, 나 또한 간간히 집에 안부 전화를 함에도 그 누구에게서도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듣지 못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고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고요함만이 들려왔다.


“엄마 어디 아파? 어디가 아픈데? 나한텐 그런 얘기 없었잖아!”


“어휴, 내가 너한테는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너 신경 쓸까봐… 그래서 계속 말 안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말을 해버리게 됐네.”


“아 그러니까 어디가 아픈 건데? 심각한 거야?”


내 입에서 “심각한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내 머리와 몸 속에서는 나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재빠르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물음에 엄마의 대답이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2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찰나의 순간에 ‘혹시 엄마가 암에 걸린 걸까? 아빠도 아픈데 엄마까지 아프면 우리집은 누가 책임지게 되는 거지? 어디 돈 많이 주는 공장에라도 빨리 취직해서 돈 벌고 짬짬이 동생이랑 번갈아 가며 간병 하고 그래야 하는 걸까?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있긴 한 걸까?’라는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지금 당장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엄마 예전에 약 잘못 먹어서 신장 쪽이 쭉 안 좋았잖아. 그래서 이번에 병원에 검사 하러 갔는데, 제 나이에 비해서 신장 기능이 50%밖에 안 되고 기능은 계속 떨어져가고... 의사가 원인 찾게 이틀 정도 입원해서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그것 때문에 입원해서 검사 받고 했던 거야. 조직 검사 하고 8시간 넘게 아주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그것 때문에 힘들었지, 뭐. 아프고 움직이지도 못하니까 소변줄 달고 있고… 아빠가 집이랑 왔다 갔다 하면서 간병해서 괜찮았어. 검사 결과는 다음 주 쯤에 나올 거야.”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암이라는 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생각했던 모든 최악의 경우가 다 비껴나갔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난 최악의 딸이라는 것을.



엄마가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했던 것은 사실이고 또 나의 진심이다. 하지만 이 사실보다도 나를 더욱 안도하게 했던 것은, 아픈 부모님을 온전히 나의 힘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큰 병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조차도 나의 안위와 미래를 먼저 걱정했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겁한 딸의 모습인가. 30년을 금지옥엽으로 키웠더니 아픈 부모에 대한 걱정보다 본인 앞가림에 대한 걱정이 먼저라니…


비겁한 변명을 덧붙이자면, 나면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엄마의 희생 뿐이었기 때문에, 그 숭고한 희생과 무언가를 책임지기 위해 겁없이 지게를 지러 나서는 용기에 감탄보다는 늘 두려움이 앞섰다. 그녀의 희생은 고등학생 때처럼 3년 만 열심히 공부하고 잘 버티면 수능일 이후에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끝에 대한 약속, 희망의 땅에 대한 약속이 정해져 있지 않은 끝 모를 희생이었다. 그리고 그 기약 없음은 내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 깊은 두려움을 심어주는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한없이 무서워 하고 피하고자 하는 대상 앞에 당당히 나아가 그에 대항해 몇 십 년 째 싸워오고 있는 엄마는 내게 영웅이자, 감히 그 숭고한 ‘희생 정신 어린’ 행위를 흉내 낼 수조차 없게 만드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건강에 대한 비보와 함께 성큼 다가온, 책임지는 행위에 네가 나서게 될 수도 있다는 예언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신장은 나빠지면 절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동년배들에 비해 신장이 50%의 기능 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행한 진실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종종 운동도 하고 등산 동호회 모임도 나가면서 식단을 조절하고 활기차게 살면 신장 기능이 급격하게 저하 되어 투석을 하거나 이식을 받아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던 검사 결과에 다시 한 번 안도하는 한편, 저만 아는 못되고 또 못난 딸내미임을 엄마가 끝까지 모르시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다시 한 번 품었다. 이때나 조금 더 시간이 흐른 지금이나 여전히 나아진 것 없고 부족한 나는 언제쯤 사랑조차도 나를 위해서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온전히 가족과 친구 그리고 타인을 위해 숭고한 사랑과 희생 정신을 내비출 수 있을까? 지금 나의 모습으로 보건대, 그런 날이 쉬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마음에 매서운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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