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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Dec 23. 2019

내게 흐릿한 기억 속 그대 그리고 나

놓치고 살아온 것들이 다시 나에게로 올 때

그런 때가 있다. 그 ‘사람’ 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와 함께 한 시간과 기억들은 아주 흐릿한 영상으로, 그마저도 더듬거리며 떠올리게 되는 그런 사람. 그리고 그나마의 기억 조각들이 썩 달갑지 않은, 불편한 사연들로 가득하다면, 이내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게는 J가 그런 사람이었다. 떠올리면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 속의 못났던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겹쳐서 눈에 비쳐오며 머리를 세차게 가로젓게 만드는 그런 사람.




J와 나는 10대 후반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20대가 된 후 8년 간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연락하지 않았던 진정한 속내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녀는 생각하는 게 얼굴에 120% 이상 선연하게 드러나서 항상 곤욕스러운 내가 부러워 할 만큼 어느 상황에서나 항상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러울 정도로 그는 어릴 때부터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온몸으로 체득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서 8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냥 남들 그렇듯이… 사느라 바빠서 연락 못했어. 미안해~”라며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때도 “그래, 다 그렇지 뭐. 나도 연락 못했었는데 뭘~”이라며 나 또한 그대로 그렇게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J는 그 어렸던 10대의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친구였지만, 어려웠다.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담임 선생님보다도, 커가면서 데면데면 하게 된 사촌오빠와 언니들보다도 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나에게 한 번씩 격의 없는 장난을 걸어오거나 나의 좋은 점에 대해 대놓고 칭찬을 할 때마다 왠지 인정 받는 것 같은 기분에 들뜨곤 했다. 반면 나의 좋지 못한 점을, 내가 숨기고 싶은 점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 꿰뚫어 보는 듯한 표정과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감없이 지적할 때면 엄마한테 혼날 때보다 더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이렇게 은연 중에 그녀를 어려워하고 때론 불편해하는 나의 마음과는 관계없이 우린 고등학교 3년 내내 붙어다녔다. 새학기에 반배정이 되어 새로운 반에 가보면 J가 있었고, 같은 반이 되지 않은 해에도 특별 활동이나 기타 활동들로 함께 하곤 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았음에도 우린 8년 이상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번호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우린 지난 시간들 동안 둘 다 한 번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서로의 카톡 목록에 떡하니 서로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은, J의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이유는 내가 J를 어렵다고 생각해서였고 그 생각의 원인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대 때의 나를 떠올리면, 못난 자격지심과 추한 질투심으로 점철된 작고 못생기고 통통한 여자 아이가 그려진다.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심지어 같이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외모로도 키로도 몸매로도 공부로도 집안으로도, 그 무엇 하나에서도 뛰어난 고지를 점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묻혀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늘 비뚤어지고 모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3명, 5명씩 홀수로 다니게 되면 항상 남는 ‘1’ 또는 ‘홀로’를 담당해야 했었던 것도 내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때때로 배알이 꼴릴 때면 친구들에게 장난이라는 명목 하에 웃으며 나보다 잘난 조건을 가진 친구들에게 못된 장난을 툭툭 뱉어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착한 친구들은 장난이라 말하는 나의 거짓된 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난으로 받아주고 넘어갔지만, J만큼은 달랐다. 그는 나의 모나고 구멍 숭숭 뚫린 내면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말 한 마디 없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눈동자에 비쳐 보이는 추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면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 할 자신이 없던 나는 늘 J의 눈을 피해버리곤 했다. 참다 못해 J가 나에게 한 번씩 차분하게 가시 돋힌 진실을 말하면, 나는 되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장난인데 뭘 그렇게까지 정색하고 그래?”라며 오히려 면박을 주곤 했다.




20대가 되면서 이전의 자격지심 가득한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함께 의도적으로 이전의 내 모습을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지우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한 탓이었을까, 지금도 10대 후반 시절을 떠올리면 나의 못나고 유치한 모습들, 지우고 싶은 기억들 몇 조각만은 끈질기게 잊히지 않고 남아 있다. 반면 좋았던 기억들은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다. 졸업 앨범과 당시 생일 때마다 주고 받았던 편지, 선물,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무언가 실체가 있는 것들이 눈 앞에 있어야만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정도로만 기억을 떠올리게 됐다.


그래서 오랜만에 J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두려움이 컸다. 그녀를 만나면 그토록 지우고 싶어했던 나 자신을 다시 선명하게 마주하게 될 것 같아서 싫었고, 비록 나는 과거의 나와 많이 달라졌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는 철없고 무지하고 못났던 그때의 내가 강력하게 자리잡아 날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해서 만나기 꺼려졌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생각보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잊고 있던 기억까지도 소환해가며 말이다. 너는 뭘 잘 했고, 그때 네가 이런 일을 했는데 재미있었다 등 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좋은 점, 우리의 재미있었던 추억을 꺼내놓았다.


아, 나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구나. 스스로를 못남의 테두리에 가두고, 어리석게도 지우면 지워질 수 있다고 믿고 과거의 나를 깨끗하게 지워 없애려고만 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지운다고 해결될 일도, 모조리 사라질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기억해서 좋은 것은 마음의 양분으로 삼고 이로 말미암아 좋지 못한 습관과 모습은 바꿔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어야 했음에도 나는 그저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것을 지우자고 해서 더욱 각인만 시키고, 좋은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나의 기억은 흐릿할 수밖에 없고, 그 흐릿한 기억마저도 한껏 부족하고 못난 모습으로만 가득하게 된 것이다.


이제라도 J를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만약 내가 또 나를 기만하고 스스로 만들어 낸 두려움과 환상의 커튼에 가려져 J를 만나겠다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J에게 원인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못난 사람으로 남아 있겠지. 아직도 과거가 나에게 성큼 다가오는 순간이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론 놓치고 살았던 것들이 문득 다시 나에게로 올 때, 나는 반성하며 나의 밭을 갈아엎고 ‘더 나은 나’라는 새로운 씨앗을 틔워내기 위해 더 큰 도약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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