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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Dec 26. 2019

부자될 수 없다 해도 오늘 입을 옷은 신중히 결정하겠어

우주를 만들 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거 결정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점심시간이 막 지난 2시쯤의 병원 대기실은 꽤나 북적거린다. 마치 주말 내내 끙끙 앓다가 월요일 오전 9시 땡!하면 물밀듯이 환자들이 몰리는 것처럼 말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사람이 많아 한참을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하릴없이 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카톡 메세지는 새로울 게 없고, SNS도 한 바퀴 돌았고 ‘지금은 또 뭔 일이 났으려나’ 싶은 생각으로 실시간 검색어도 흘끔 한 번 쳐다봐주었음에도 아직 내 앞으로 먼저 온 환자가 4명이나 남아있다. 특별하게 검색할 것이 없으면 구글보다는 만만한 게 네이버라서 네이버 메인 화면만 이리저리 옆으로 슥슥 밀어보다가 우연히 카드 뉴스처럼 책을 짧게 소개하는 포스트를 보게 되었다.


20장 안팎의 포스트에는 성급한 성격으로 국에 밥 말아 먹듯  휘리릭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걱정과 핀잔을 많이 듣지만, 사실 부자들 중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격을 고쳐서라도 의사결정에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주의도 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매일 검정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는 것과 워렌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이 점심 메뉴 고르는 것 그리고 오늘 입을 옷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고 매일 비슷한 것을 먹거나 입는 것을 예시로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를 머릿속에서 없앨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는 게 많은데 왜? 세상에 이렇게나 멋있고 예쁜 옷들이 많은데 도대체 왜? 아니, 무엇보다도 부자라면 선택지가 더 많아 매일 행복한 고민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라니, 지금까지 꿈꿔왔던 ‘로또 맞아서 부자 되기’에 회의감이 생길 뻔 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크레이지 코리안걸인 나는 꿈의 끝자락을 절대 놓지 않았고, 차라리 내가 얼른 부자가 되어서 부자들의 의사 결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확-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책을 쓴 사람과 포스트를 만든 사람을 까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는 ‘진짜’ 있는 사실과 데이터를 축적해 열심히 책을 쓴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나처럼 살짝 비뚤어진 사람에게는 아니꼽게 보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슈퍼 리치들 중에는 실제로 저들이 말한 것처럼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오늘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것, 퇴근 후 어떤 식당에서 회식을 할 것인지, 주변 지인들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는 날에 어떤 선물을 할 것인지 등을 정하는 것이 번거롭고 불필요하게 시간이 많이 드는 의사결정이라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후딱 해치워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주를 만들 것도 아닌데’, 어떤 옷을 입을 지 정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점심으로 어떤 것을 먹을 지 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까우면 얼마나 아깝다고 ‘결정’들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가는 데 순서 없다는데 사는 동안이라도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결정 해가면서 살자 좀!


과거에는 내 인생에 중대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나에게 주어진 그리고 내가 완수하고 싶은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걸 위해 투우 경기 속 뿔난 소처럼 목표만 보고 돌진했다. 그 과정에서 목표에 불필요 하다고 생각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것들은 선택지에 두지도 않고 제쳐버렸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라는 목표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게 된 지금은, 목표를 향해 갈 길이 멀다 해도 주변에 피어 있는 꽃들의 꽃내음을 맡고 나무, 나비, 하늘도 보면서 즐기면서 룰루랄라 길을 걸어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룰루랄라의 길이 생각보다 행복하고 즐거우며 또 한편으로는 목표를 향해 무조건 돌진만 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런 내게 누군가 “너 그렇게 우물쭈물 꾸물거리면서 사소한 일들과 불필요한 의사결정에 시간을 많이 쏟으면 ‘부자 되기’라는 인생 목표는 죽을 때까지 달성할 수 없어!”라고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거울 앞에서 오늘 입을 옷을 이것 저것 코디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동료들과 메뉴판을 앞에 두고 “다 맛있어 보이니까! 너는 이걸 시키고 나는 요거, 또 너는 저거 시켜서 나눠 먹자”라고 하며 즐거운 고민을 할 때, 이 시간들이 아깝고 불필요 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시간들이 모여 행복한 나, 즐거운 나를 만들고 또 기억할 만한 추억들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기쁘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이런 행복을 빼앗긴 채로 꿈이 이뤄진다면, 생각보다 그렇게 이뤄진 꿈이 달콤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부자 되기’는 여전히 나의 인생 목표로서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욕망 어린 꿈이기에, 꿈을 포기하는 선택지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바득바득 꿈을 이뤄내어 ‘저렇게 나태하고 이것 저것 참견 다 하는 사람도 부자가 됐는데, 이렇게 열심히 살고 결정 빠릿하게 내리는 내가 부자 못 될 리는 없지!’라며 조막만 한 희망이라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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