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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Jan 16. 2020

무뚝뚝한데, 뭐 보태준 것 있나요?

타고난 성격을 개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고객님! 너무 무뚝뚝 하세요~ 반응이 미적지근… 아, 이러니까 일할 맛 안 나잖아~~~!”


고객으로 방문했던 미용실에서 ‘내돈내한(내 돈 주고 내가 한 머리)’ 하면서 들은 말이다.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곳에서 고객이 되어봤고, 반대로 다양한 역할의 아르바이트생 혹은 직원이 되어봤지만 이런 말을 듣기는 또 처음. 참 놀라우면서도 참신했다. 이제는 손님의 갑질을 넘어서서 오히려 직원의 갑질과 무례함이 터져나오는 시대인가 보다.




내성적이다. 낯가림이 심하다. 말수가 적다. 무뚝뚝하다. 잘 웃지 않는다. 감정의 동요가 없다. 생각하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난다. 싸가지 없어 보인다. 첫인상이 별로다. 가만히 있으면 화난 것 같다. 미소가 어색하다. 같이 있으면 마가 뜬다(?).


나를 처음 본 사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한 번 보고 말 사이의 사람들에게서 그간 들어왔던 나에 대한 인상과 감상이다. 단어와 문장들만 놓고 보면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이 이만큼의 안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스스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타고나길 외모 자체가 쌍꺼풀 없이 작은 눈, 각진 얼굴형을 가지고 있기에 성형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인상이 바뀌긴 어렵다. 그럼에도 칼 대는 게 무서워서, 돈이 많이 들어서, 결정적으로는 수술이 망하면 지금보다도 더 못한 인상이 될까 두려워서 성형수술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그렇다면 반문할 수 있겠다. 외모는 타고나는 부분이라 선택이 어려우니 그렇다 쳐도, 그렇다면 성격이라도 유들유들, 방긋방긋 웃을 수 없냐고. 그러면 나는 재차 반문한다.


왜?


내 성격, 굳이 지적하는 당신만 아니면 바꾸고 싶지 않은 걸요?


잘 웃으며 사람 좋고 성격 좋은 사람들은 절에 가서도 젓국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가지고 있는 호감형 기운을 바탕으로 어딜 가나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에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공감하는 것과는 별개로, 외모 뿐만 아니라 성격도 사람마다 천차만별, 천지차이인데 이것을 개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꾸라고만 강권하는 사회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왜 우리는 모두가 로봇처럼, ARS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친절한 기계음처럼 그렇게 시종일관 밝고 기뻐야만 할까? 성격도 외모처럼 개성인데, 왜 우리는 항상 친근감 있는 대화와 빵 터지는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야만 하는 걸까? 타인에게 쌀쌀맞게 굴거나 막 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본래 가진 성격에 괴로워 하면서까지 타인의 반응을 의식해서 억지 웃음과 미소를 광대 근육이 끊어질 때까지 지어 보여야 하는 걸까?




타고난 성격이 좋아서 어딜 가서든 웃는 얼굴로 유쾌하게 대화를 잘 하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되고 싶고, 말주변이 좋아서 주변에 기분 좋은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타고나길 수줍음 많고 낯가림이 심하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악의가 없어도 겉으로 표현이 잘 되지 않을 뿐이다. 노력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함께 있으면 마가 뜬다는 말에 이것저것 일부러 억지 질문을 짜내서 상대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상대가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해도 최선을 다해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에 의해 빚어진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상대도 알게 된다. 나의 어색하고 과장된 노력의 몸짓을.


세상의 미의 기준에 맞추어 예뻐지고 싶다면 성형수술을 택하면 된다.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싶다면 식단을 조절하고 열심히 운동을 하면 된다. 똑똑한 사람으로 칭찬 받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깊게 공부하면 되고, 사람 만나는 게 좋고 교류가 좋으면 모임이나 동호회에 열심히 참여하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의 전제에는 ‘선택’이 있다. 수술로 외모를 변화시키는 것도, 운동으로 몸매를 가꾸는 것도,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열중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그 다음에 ‘열심히’와 ‘성과’가 따라온다. 스스로의 다짐에 의해 시작되지 않은, 타인과 세상의 시선에 의해 시작된 것은 결국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고 혼자 지쳐 나가 떨어지면서 좌절만 느끼게 할 뿐이다.


성격 개조도 마찬가지다. 바꾸어야만 하는 필요성을 스스로 절실히 느끼고 시도하고 노력할 때만 원하는 성격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애초에 타고난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격을 바꾸는 게 100%의 확률로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피나는 노력만 있으면 일부 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일할 맛 안 나게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핀잔을 들을지 언정, 성격을 바꿀 생각은 없다. 살아오면서 수 십 번도 더 시도하고 도전했다. 스스로도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놈의 어색한 성격을 바꾸기 위해. 하지만 어느 순간, 나조차도 내 성격의 단점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살갑지 못한 성격이지만, 일단 친해지면 누구보다도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다정하게 말할 줄 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때론 말문이 빵 하고 크게 터져서 조잘조잘 수다도 떨 줄 알고, 심리상담사나 초등학교 선생님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만큼 타인의 말을 끈기 있게 잘 들어주기도 한다.



나를 깊게 아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조차도 가끔은 나의 좋은 점을 일부러 곱씹어봐야 할 정도로 장점에 대해 무신경하게 생각하는데, 하물며 처음 보는 사람, 오늘만 보고 말 사람 등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너무 무례해서 오히려 대범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평가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렇게 상처 받은 마음에 대해 스스로 정리를 하면서도 다음에 또다시 말수가 없다, 웃음이 별로 없으시네요, 표정을 보아하니 혹시 지금 기분 안 좋으신가요 등 비슷한 말을 들으면 번민하고 고뇌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무례한 그들에게는 닿을 수 없겠지만, 상처 받은 마음을 위해 지금만큼은 소리 없이 크게 아우성 쳐보고 싶다.


“내가 무뚝뚝한데, 뭐 보태준 것 있어요?
당신 성격이 그런 것처럼 내 성격도 그냥 이런 거예요.
성격도 개성이니까 그만 지적해 줄래요?”


가리워진 모습 뒤의 진실한 표정이 궁금하듯, 그 사람의 개성 있는 성격, 그 자체를 궁금해하고 존중할 수 있길... ©푸들 with 스튜디오 크로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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