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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Mar 05. 2020

직업은 전업주부입니다

번듯하지 않은 직업을 인정하기까지

지금도 이런 걸 조사하는지 모르겠다. 10여 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매년 학기 초가 되면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집안 사정, 정확히 말하면 집안의 ‘경제 상황’을 낱낱이 까발려야 하는 설문지가 주어지곤 했다. 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에서부터 가족 구성원의 이름, 나이 뿐만 아니라 직업까지 속속들이 적어야 했다. 몇 살 때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꽤 어렸을 때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 혹은 월세인지, 부모님의 대략적인 수입은 어떠한지, 가족 구성원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에 대해서까지 기재하는 공란이 있었다.


물론 무시 못할 금액의 빚을 깔고 앉아야 했지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갈 무렵의 우리집은 자가였다. IMF 때문에 힘든 시기이긴 했지만 아빠가 운영하던 가게도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었다. 엄마도 남 밑에서 일하지 않고, 아빠의 일을 도우며 반 전업주부처럼 생활했기에 당시 우리집 가계 상황은 크게 나쁘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그래서일까,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 조사서를 작성할 때면 엄마는 나름대로 자신 있게 딱딱 써내려 갔다.


하지만 뒤집혀버린 상황의 폭풍 같은 여파로 엄마가 둘째 이모가 소개해준 남의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정 조사서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선뜻 반가워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는,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꽤나 멀어진 사이라고 생각하는 옛 친구가 거리낌 없이 연락해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특히 가정 조사서의 직업란과 학력란 앞에서 엄마는 머뭇거릴 때가 많았다.



엄마는 고졸이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식당에서 서빙하는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정 조사서를 작성할 때면 대졸에 자영업자인 아빠는 쓱쓱 쉽게 쓰고 금방 자리를 뜬 반면, 엄마는 매번 내게 물었다.


“학력은... 고졸이라고 쓰고, 직업은 가정 주부라고 쓸까?”


“주부라고 쓰는 게 낫겠어? 그럼 엄마 편한 대로 해. 나는 상관 없어.”


엄마가 어떤 생각으로 직업란에 ‘가정 주부’라고 쓰길 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추측컨대, 2가지 이유로 가늠 해볼 수 있을 듯 하다. 하나는 은근히 슬쩍 보게 되는 친구의 가정 조사서처럼, 내 친구 중 누군가가 내 가정 조사서를 보게 된다면 자식인 내가 창피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엄마 본인이 생각하기에 식당 종업원이라는 직업을 쓸 바에는 차라리 집에서 일하는 가정 주부라고 쓰는 게 여러 면에서 덜 부끄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편견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엄마가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라고 쿨하게 엄마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어린 마음에 나 또한 가정 주부로 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운전하는 탑차를 선뜻 탈 수 없었던 것처럼 서빙 종업원이라는 엄마의 직업을 대놓고 내보이기에는 내 소갈머리가 좁디 좁고 얕디 얕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겁하게도 엄마의 말에 기대어 내 마음을 숨겨왔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엄마와 엄마의 직업을 흔쾌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부모와 비교하고 내 처지의 원인을 가난한 부모에게 돌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든 지난한 시간들과 과정을 거쳐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만큼은 “우리 엄마 아직도 일하고 계셔. 식당에서 서빙 하시는데, 힘들어도 보람차게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물론 무리 하시니까 건강은 걱정 되지만...”이라고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다들 겉으로라도 “대단하시다. 식당일 힘들잖아. 엄마 너무 멋있으시다!”라며 경탄을 표한다.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엄마가 건강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무조건 뿌듯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자식인 내가 조금 더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 했다면 진작 그만뒀을 일이기에 안타까움과 죄송한 마음이 크게 밀려온다. 그럼에도 “우리처럼 서빙 해주고 고기 잘라주는 사람이 없으면 손님들도 편하게 밥 못 먹는 거야.”라며 이제라도 일에서 느끼는 보람을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은 분명하다.


세간에서 말하는 ‘번듯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직업이 아니기에 스스로도 인정하기 벅찼던 시간을 견뎌내고 이제는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떳떳함을 안게 된 엄마. 엄마의 지나온 시간과 더불어 건강하게 일할 앞으로의 날들에 미리 한아름의 박수 갈채를 보낸다.


©푸들 with 스튜디오 크로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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