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하루 Nov 17. 2022

누구를 위해 고등어를 굽는가

고등어구이

언젠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집 안에 생선 냄새 배는 게 싫어서 생선을 집에서 굽지 않고, 생선구이가 먹고 싶을 때는 식당에 가서 사 먹는다고 했다. 고등어, 갈치, 삼치, 조기, 서대 등 구워 먹을 수 있는 생선은 모두 집에서 구워 먹는(소여사가 구워주지만) 나로선 놀랄 노 자였다. 


소여사는 여러 생선 중에서도 살이 많고 잔가시가 적은 고등어를 아이들 어려서부터 많이 구워주셨다. 식탁에 고등어 구이가 올라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딴 반찬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미식가 첫째는 기름기 많은 뱃살 부분을 둘째는 껍질 쪽에 붙어 있는 검은 살을 찾아 먹는다. 


고등어가 잔가시가 적다고는 하지만 생선은 생선. 가시를 빼고 살만 골라주어야 한다. 소여사는 돋보기를 낀 채로 가시들을 추려낸다. 본인은 가시에 붙어 있는 자잘한 살들을 발라먹고 손주들 밥그릇에 고등어살을 가득 올려준다. 손주들 목에 가시 걸릴까 집중해서 가시를 빼내어 보지만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탓에 아이들은 켁켁거리며 커다란 가시를 뱉어내곤 한다.


소여사가 고등어구이 조리법을 바꾸게 된 건 에어프라이어를 만나고부터다. 늘상 뒤집고 볶고 삶는 조리법을 고수해왔던 소여사는 에어프라이어라는 낯선 도구를 믿지 못했다. 에어프라이어에서 튀겨낸 마른 돈까스를 보시곤 역시 기름에 튀겼어야 했다며 에어프라이어를 한껏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고등어를 에어프라이어에 넣어서 구워보았는데 고등어가 속까지 잘 익혀진 데다 기름도 튀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 이후로 소여사는 에어프라이어 조작법을 익히고 고등어를 에어프라이어에 굽기 시작했다. 


에어프라이어를 만나기 전에는 프라이팬에 고등어를 구웠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등어를 넣으면 넣는 순간 치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기름이 튀었다. 기름 튀는 걸 막으려고 고등어를 프라이팬에 넣자마자 잘 접은 신문지를 위에 얹었다. 신문지가 공기 중으로 뛰쳐나가려는 기름은 막아 주었지만 냄새까지 막지는 못해 고등어구이를 하는 날이면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부터 오늘의 메뉴를 알 수 있었다. 프라이팬을 덮었던 신문에 불이 붙어 아찔했던 적도 있었다. 남들은 에어프라이어에 여러 가지 맛난 음식들도 많이 해 먹는 모양이던데 우리 집 에어프라이어는 고등어 같은 생선, 고구마를 굽는 용도로 전락해 버렸다. 


소여사는 생선을 살 때면 꼭 오일장에 간다. 생고등어가 많이 나는 철이면 생고등어를 사 와서 묵은지, 무를 넣고 조림을 해주신다. 생고등어는 굵은소금 간을 했다가 고등어구이를 했다. 얼리지 않고 바로 구운 생고등어는 기름이 지글지글 배어나고 살은 부드럽다. 넉넉하게 사온 고등어는 소금 목욕을 한 후 한 마리씩 봉투에 담겨 차곡차곡 냉동실에 얼린다. 여름에는 간고등어를 팔기 때문에 소여사가 따로 간을 하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상할까 짜게 간을 한 간고등어는 물에 한번 씻어내어 구워도 간이 짭쪼롬하다. 생고등어처럼 부드러운 맛은 없지만 단단한 생선 살이 씹는 맛이 있다.  


언젠가 노르웨이에서 고등어를 잡고 공장에서 포장해서 판매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를 보았다. 노르웨이에서는 잘 먹지 않는 생선을 팔아 수입을 올리니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 고등어를 분류, 세척하고 냉동 보관하는 과정이 신속하고 깨끗해 보였다. 진공 포장된 노르웨이 고등어를 먹어본 적 있었는데 포장지를 뜯어 바로 요리할 수 있어 편했다. 그래도 나는 어쩐지 소여사가 직접 시장에서 사다 굵은소금으로 간을 하고 튀겨낸 통통한 고등어가 더 맛있는 것 같다. 


글을 쓰다보니 '한 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더니'로 시작하는 노래가 떠올라 가사를 찾아보니 이랬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늘 앞부분만 흥얼거리다 말았는데 노래 가사를 살펴보니 어머니는 내일 고등어를 구워주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그걸 본 이는 내일 고등어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차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래 속의 어머니도, 우리 집 소여사도 고등어구이는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굽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길을 뚫고 온 카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