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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18. 2022

눈길을 뚫고 온 카레

카레

며칠 전, 첫째 아이가 조금 매콤한 카레가 먹고 싶다고 했다. 늘 그렇듯 엄마인 나는 흘려들었던 그 말을 소여사는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토요일 아침 눈 떠보니 창밖이 하얬다. 포슬포슬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좋아서 깡충거렸지만 나는 설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주말 아침을 시작했다. 아침을 다 먹을 즈음 소여사에게 전화가 왔다.

"카레 해서 가지고 간다."

몇 분 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커피 사간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 맞지?"


얼마 뒤, 아빠는 두꺼운 패딩에 귀마개까지 단단히 하고 한 손에는 카레가 담긴 스테인리스 용기를 한 손에는 커피 두 잔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꼬리처럼 딸려 들어온 겨울 찬바람이 현관에 머물렀다. 아빠의 뺨은 붉게 얼어 있고 패딩 위로 눈 녹은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툭 배달기사처럼 카레를 두고 떠나셨다.

소여사표 노란 카레가 아직도 따뜻했다. 아침부터 야채를 썰고 카레가루를 풀어 저어가며 카레를 끓였을 수고로움에 미안해졌다. 눈 오는 아침 한 사람은 카레를 끓이고 또 한 사람은 눈길을 뚫고 카레를 가져온다. 그 마음이 찡했다. 매일 새벽 추위를 뚫고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데 주말이라도 늦잠 자고 편히 쉴 법도 하건만 주말 아침에도 손주들 먹이겠다고 카레를 끓인 마음이, 그 카레를 전해 주겠다고 카레가 담긴 통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온 마음이 깊고 깊었다.


아이들은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니 막 지은 따끈한 밥에 카레 두 국자를 올려준다. 식은 카레와 따끈한 밥이 만나 먹기 적당한 온도가 된다. 뭐든 뜨끈해야 맛있다는 남편은 먹을 만큼 전자레인지에 데워 밥에 올려 먹었다. 첫째는 밥과 비벼 쩝쩝거리며 먹고, 매운 걸 잘 못 먹는 둘째는 밥 한 입 동치미 국물 한 입 번갈아가며 잘 먹는다.


창 밖에는 눈이 쌓여 있고, 추운 것도 아닌데 매콤한 카레라이스 덕분에 호호 거리며 저녁을 갈무리했다.


눈 오는 날, 카레라이스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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