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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17. 2022

아줌마 TT

트와이스의 'TT'

첫 아이를 낳고는 출산 휴가 3개월 후에 바로 복직을 했다. 어린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는 일이란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가슴이 미어지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적잖이 쌓였다.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꼭 육아휴직을 해서 내 손으로 아이를 먹이고 재우며 온종일 함께 하겠다 결심했다.


막상 육아휴직을 하고 보니 내가 했던 큰 결심에 비해 돌아오는 만족감은 크지 않았다. 원래라면 학교로 출근해서 바쁘게 하루를 보냈을 시간에 말 못하는 아이에게 홀로 말을 걸어가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낯설고 지루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첫째 아이가 돌아오고서는 두 아이를 번갈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잠시라도 내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예전에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전에 문화센터에 다니는 전업주부가 제일 부럽다고 했던게 생각났다. 그래! 그거야!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쭉 살펴보다 내 눈에 딱 걸린 건 방송댄스였다. 몸을 좀 흔들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이어트에도 좋겠다 싶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수업을 하니 시간도 많이 뺏기지 않을 것 같았다.


대망의 첫 수업 날. 나를 포함한 신참 세 명이 쭈뼛쭈뼛 맨 뒤에 서서 수업을 기다렸다. 고참으로 보이는 몇 아주머니들은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자기들의 자리를 찾아 물병을 옆에 두고 스트레칭을 하며 여유를 뽐냈다. 그때 근육 빵빵 50대 아주머니가 우리 앞을 지나 맨 앞으로 가서 섰다. 화려한 호피 무늬 외투를 벗자 가슴골이 드러나는 파인 윗옷과 딱 붙는 레깅스로 남다른 포스를 뽐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늦어서 미안하다며 호들갑스럽게 말하곤 우리 쪽을 보았다. 처음이니 잘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따라 해 보라는 말씀을 남기고 커다란 오디오 쪽으로 가서 음악을 틀었다.


이런..... 이런 게 아닌데...... 강의실을 울리는 트로트 선율...... 나는 방송 댄스 배우려고 온 건데......  안동역에서를 시작으로 사랑의 배터리, 보약 같은 친구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고참들은 익숙한 듯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고, 강사는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가며 근육질 몸을 신나게 움직였다. 강사의 몸은 점점 땀으로 젖어가고 송골송골 맺히던 땀은 바닥에 빗물처럼 떨어졌다. 우리 신참들은 어렵지도 않은 그 동작을 어설프게 쭈뼛거렸더니 이마에 땀 한 방울 맺히지 않았다.


다음 수업 날, 이걸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3개월 봄학기 수강료를 이미 결재한 터라 그래 딱 3개월만 아줌마들 틈에서 운동한다 생각하자 생각하며 다녔다.


3개월이 지나고 나는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벗고 살을 드러낸 옷을 입고 당당하게 맨 앞줄로 입성했다. 트로트로 시작하는 몸풀기 동작도 제법 익숙해져서 고참 티가 났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물통을 들고 내 자리에 가서 몸을 쭉쭉 늘려가며 스트레칭을 했다. 3개월 전 내가 본 고참들처럼.


강사가 새로운 곡에 들어간다고 했다. 요즘 엄청 인기 있는 곡이고, 걸그룹 노래라고 했다. 드디어 나도 에어로빅이 아니고 방송댄스를 배우는구나 기대가 되었다. 그 곡이 바로 트와이스의 TT였다. 중간 부분에 손가락으로 알파벳 T 모양을 만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부분만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되었다는 말인즉슨 나머지 동작들은 트로트 에 맞춰 춤을 출 때 했던 동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니 강사의 동작에 미세하게나마 TT의 춤 동작이 들어있기는 했지만 노래가 없이 춤추는 모습만 본다면 누구도 TT 음악에 맞춘 동작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춤이었다.


실망했지만 트로트 때부터 이미 마음을 비운 터라 강사를 따라 열심히 동작을 익혀 나갔다. 새로운 버전의 TT를 섭렵하고 나는 흥에 겨워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춤을 보여주기도 했다. TT가 아닌 TT를 추며 어쩐지 마음은 홀가분했다. 내가 걸그룹이 될 것도 아니고, 어디서 공연을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니 그걸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새로운 버전 TT는 지금도 몸에 익혀져 라디오에서 TT가 흘러나오면 자동반사처럼 몸이 출렁거린다.


걸걸한 목소리로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던 강사, 아이를 다 키우고 이제야 본인들 시간을 갖는 중년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춤추고 떠들며 1년을 함께 보냈다. 수업이 끝나면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도 먹으러 가고 따로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지만 감히 내가 낄 자리가 아니므로 수업이 끝나면 가장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입자에서도 육아휴직하고 춤추러 온 30대 젊은 처자가 무지도 불편했을 것 같다.


1년이 지나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고, 아주머니들 틈에서 춤추던 시간은 아스라이 추억으로 남았다.


누구에게 방송 댄스를 배운 여자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내 마음대로 TT를 출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다.(말로만! 몸으로 보여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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