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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17. 2022

친구에게 바치는 축가

린의 '자기야 여보야 사랑아'

중학교 2학년, 15살에 만난 친구가 있다. 커트 머리에 작은 키, 맨 앞에 앉아 선생님께 당돌하게 말하는 야무진 아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 친구와 나는 취향이 모두 반대였다. 팔짱을 끼고 팬시점에 가서 문구를 고를 때 내가 별로인 것을 집어 들고 그 친구에게 "너 이거 괜찮지?"하고 물으면 무조건 괜찮았으니까. 그런데도 그런 친구가 편하고 좋았고, 그 친구 역시 그랬다.


처음 몰래 술을 마셔본 것도, 처음 19금 영화를 본 것도 그 친구와 함께였다.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주말에 만나 수다를 떨고 같이 밥을 먹었다. 가끔 집이 비는 친구 집에서 손을 꼭 잡고 잔 것도 여러 번이다. 대학생, 어른이 되어도 우정이 빈틈없이 이어졌다. 멀리 있는 턱에 전화로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눴지만 늘 곁에 있는 것 같이 든든했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느라 만나는 간격은 더욱 멀어졌지만 매년 서로의 생일을 꼭 챙겼다. 나보다 한참이나 뒤늦게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다가 무척 놀랐다. 친구는 나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축가는 린의 '자기야 여보야 사랑아'로 정했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내 이름을 넣어 서로를 00아빠, 00엄마라고 부른다. 다정하게 여보 하고 부르면 어떠냐고 졸라도 봤지만 한번 입에 붙은 호칭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이 서로를 자기야, 여보야 하며 서로를 부르며 행복하길 바랐다.



결혼식은 12월이었다.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 축가를 한다고 치마에 핸드메이드 코트를 입고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서울 공기가 무척 매서웠다. 친구 가족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다른 층에 있는 카페에서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내 자기야 내 여보야 내 사랑아 너를 생각하면 어쩌면 꿈을 꾸는 것 같아'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 신부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는데 가슴이 너무 떨리다 못해 내려앉을 것 같았다. 다행히 하객들 쪽이 암전이 되어 보이지 않아 진정이 되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친구를 보니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친구가 먼저 느꼈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교복 입고 만난 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노래했다. 노래 가사 하나하나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다행히 가사를 틀리지 않고 무사히 축가를 마치고 내려왔다. 


중학교 때 보고 처음 보는 친구 몇 명을 만났다. 반가우면서 어색했다. 털털하고 웃겼던 친구가 숙녀가 되어 있고, 일찍 연애를 했던 친구는 벌써 초등학생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반갑고 어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마쳤다. 


친구 덕분에 서울 나들이도 하고, 오랜만에 옛 친구도 만났다. 그리고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구의 행복을 바라며 노래할 수 있어 무척 기뻤다. 누구나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닌 노래라는 특별한 선물을 줄 수 있었으니까.


참 감사해 함께라서 난 행복해

가사에 담긴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친구에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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