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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18. 2022

'네모의 꿈'은 사실 '직육면체의 꿈'이었어

W.H.I.T.E. 의 '네모의 꿈'

초등 임용고시는 1차 필기시험을 마치면 2차 수업 시연이 있다. 주어진 과목과 수업 주제에 맞게 수업 지도안(수업 진행 계획서 같은 것)을 쓰고 면접관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 초등 6년 과정 중에 어떤 과목,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니 면접을 준비하면서 교과서를 샅샅이 살펴보고 어떤 과목에도 적용 가능한 일정한 패턴 같은 것을 연습해 둔다.


제시된 시험 문제는 수학, 평면도형, 수업 도입 부분을 시연하라는 것이었다. 대개 수업 도입은 학생들 흥미를 끌게 하려고 생활 속의 재미있는 것들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때 생각난 노래가 '네모의 꿈'.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인 세상을 노래하며 등장하는 많은 네모난 물건들이 수업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밝고 장난스러운 분위기도 딱 좋고.


면접관 5명 앞에 서서 수업 시연을 시작했다. 칠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지도 않은 카세트의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무표정인 면접관(교장선생님들) 앞에서

"노래 잘 들었나요? 노래 가사 속에서 네모난 것은 무엇이 있다고 했나요?" (면접관은 포커페이스 중)

(허공에 손을 뻗으며) "00, 발표해 볼까요?"

 (조금 뜸을 들인 후) "그래요, 맞아요. 잘했어요."

이렇게 혼신의 연기를 이어갔다. 한겨울임에도 등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연기를 계속하며 공부할 내용, 학습 순서 같은 것도 칠판에 반듯반듯 적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빈 교실에서 혼자만의 수업을 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고요하고 어색했지만 합격을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다행히 임용고시에 합격 함으로써 원맨쇼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게 되었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도형 수업을 하다 문득 이 노래가 생각이 나서 들려주었더니 아이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귀여운 그림으로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진 화면을 보며 아이들과 몇 번을 따라 불렀다. 그러다 문득 가사에 나오는 네모난 침대, 네모난 창문, 네모난 문, 네모난 테이블, 네모난 조간신문, 네모난 책가방, 네모난 버스, 네모난 건물...... 네모나다고 말한 이 물건들이 죄다 입체도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네모가 아니라 직육면체인 것이다! 비로소 알게 된 노래의 비밀. 노래는 직육면체 침대, 직육면체 창문, 직육면체 문...... 이 맞는 것이다. 마침내 오류가 눈에 보이는 교사가 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네모면 어떻고 직육면체면 어떤가. 노래에서는 온통 네모난 세상에서 둥글게 살라는 어른을 비꼬고 있지만 뾰족했던 네 각도 시간이 흐르면 닳고 무뎌지다 둥글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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