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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25. 2022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는

낙지죽

낙지 하면 쓰러진 소가 낙지를 먹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그 장면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소여사가 낙지 요리를 할 때마다 단골처럼 쓰는 말이라 그 모습을 본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것이다. 내가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어깨가 축 처지는 날이면 뜨끈한 낙지죽을 해주셨다. 무뚝뚝한 소여사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해주는 음식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다. 소를 일으켜 세운다는 레퍼토리에 세뇌를 당한 탓인지 낙지죽을 먹고 나면 어딘가에 숨어있던 힘이 불끈 솟곤 했다.


통통한 낙지를 물에 살짝 데치고 잘게 썰어 둔다. 불려둔 흰 쌀과 당근을 볶아 물을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낙지를 넣고 저어 익혀준다. 소금 간을 하고 참기름을 휘 둘러주면 된다.

소여사표 낙지죽

아이가 씹기에 낙지가 질길 수 있어서 두 아이가 어릴 때는 세발낙지를 사다가 살짝 데친 후에 도깨비방망이로 잘게 다져 넣어 죽 속에 낙지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게 해서 먹이곤 했다. 이제는 데친 낙지를 잘게 썰어 넣고 끓여도 잘 먹는다. 사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같은 레퍼토리를 들은 아이들은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마법에 빠져 먹는 것 같다.  


올겨울 초입 아이들과 내가 비실거렸다. 두 아이와 내가 번갈아 병원에 드나들던 때였다. 아침 식사로 낙지죽이 올라왔다. 볶아서 끓인 쌀은 씹을수록 쫀득거리면서 고소하고, 핑크빛이 도는 낙지는 탱글탱글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총각무김치를 같이 먹으니 무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더해져 후루룩 잘 넘어갔다. 두 아이도 군말 없이 죽 한 그릇을 비워냈다.


희한하게 식당에서 먹었던 낙지호롱, 낙지볶음을 먹을 때는 맵고 짭짤한 맛 때문에 맛있다고 느끼며 먹는다. 그런데 먹고 나면 꼭 속이 아리거나 배탈이 나곤 한다. 똑같은 낙지를 재료로 한 요리인데 왜 소여사의 낙지 죽은 힘이 나고, 사 먹는 낙지 요리는 그렇지 않을까.


쓰러진 낙지를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의 힘을 굳게 믿고 정성을 쏟아야만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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