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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16. 2022

홍시 익어가는 시간

홍시감

가을 초입에 들어서자 두 아이가 할머니께 묻는다.

"할머니 홍시 언제 먹을 수 있어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던가? 어려서부터 홍시를 먹어온 아이들은 가을이 되면 달콤한 홍시 맛을 떠올린다. 소여사는 대봉을 박스째 사서 베란다에 주르륵 늘어놓고는 홍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몇 개는 쟁반에 담아와 부엌 한편에 두고 어서 홍시가 돼라 재촉한다. 아이들은 부엌에 놓인 대봉감을 매일 들여다보고 손가락으로 찔러본다.


며칠이 지나면 하나 둘 홍시가 된다. 주황빛을 띠던 감이 주홍빛으로 바뀌고, 단단하게 산 모양을 하고 서 있던 감은 말캉해지며 뾰족함이 둥글게 내려앉는다. 이쯤 되면 소여사는 홍시를 집어 들고 싱크대에서 흐르는 물에 잘 씻는다. 꼭지를 빼내고 양손으로 홍시를 집어 두 쪽으로 가른다. 힘없이 갈라지고 벌어진 홍시 속살이 붉은 노을 같다. 잘 익어 손으로 들고 있으면 속살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가운데에 있는 하얀 심은 변비를 만든다며 얼른 빼내고 접시에 담은 다음 숟가락을 들고 간다.


달달한 홍시 냄새를 맡은 아이들은 할머니 옆으로 가서 앉는다. 소여사는 부드러운 속살을 숟가락으로 푹 떠서 아이 입에 넣어준다. 오물거리는가 싶은데 금방 꿀꺽 삼키고는 아기새마냥 얼른 달라 기다린다. 소여사의 손은 더 바빠진다. 씨가 들어있는 부분을 입에 넣어줄 때는 먹고 마지막에 씨를 뱉으라고 한다. 어려서는 씨 뱉는 요령이 없어 속살까지 덤으로 뱉어내더니 요즘은 요령이 생겨 입을 오물오물거리다 검은 씨만 쏘옥 뱉어낸다. 주먹만 한 홍시 한 개를 날름 해치우고선 또 달라 아우성이다.


잘 익은 한 두 개 홍시만 먹을 수 있으니 어른들 몫은 돌아오지도 않건만 아이들은 아쉬움에 입을 쩝쩝거린다. 어느 날이 되면 홍시가 여러 개가 한꺼번에 되기도 한다. 그런 날은 간간히 어른들도 맛볼 수 있게 되지만 소여사는 딸인 나에게 먹으라 한다. 엄마 드시라 권해도 손사래를 치며 나에게 먹으라 하신다.


아이들이 홍시를 너무 좋아하기에 몇 해 전에는 어딘가에서 들은 대로 얼려두었다. 꽁꽁 얼은 홍시를 꺼내놓고 기다려 보았더니 부드럽고 적당히 말랑하던 원래 홍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덜 녹은 홍시는 얼음처럼 서걱거리고, 너무 많이 녹아버린 홍시는 홍시의 단맛은 남아 있는데 뭐랄까 홍시 물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는 게 아쉽지만 홍시는 가을의 끝자락에만 맛보기로 했다. 또 내년 가을에도 먹을 수 있으니까.


굽고 튀긴 주전부리가 넘쳐나고 돈만 가지고 가면 금방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지천 이건만 홍시가 주는 기다림과 기다림 끝에 맛보는 달콤함에 비견할 수 없다. 때가 되어야 먹을 수 있는 가을의 홍시처럼 어떤 일이든 알맞게 무르익어야 되는 법인가 보다. 기다리고, 기다림에 순응하며 조금은 느리게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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