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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24. 2022

올해도 나 홀로 집에 보셨나요?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식탁에서 진지한 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크리스마스에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바타 2'가 개봉했으니 보러 가자는 남편, '빼꼼'을 보자는 첫째, '나 홀로 집에'를 보자는 둘째. 사실 작년과 재작년에 나 홀로 집에 1, 2를 연달아 보았다.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영화는 '나 홀로 집에'.


걸어서 15분 거리의 엄마 집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 집은 텔레비전이 거실에 없는 데다 소파도 없어 극장 분위기를 내기 어렵다. 부모님 드실 따뜻한 커피 두 잔, 케이크를 대신한 몽블랑빵을 손에 들고 하얗게 눈 쌓인 거리를 아이와 손을 잡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소여사 부엌도 문을 닫았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로 점심을 대신하고 거실 커튼을 쳐서 극장처럼 어둡게 만든 다음 '나 홀로 집에 2'를 틀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개봉을 했던 영화니 30년이 된 영화인데도 늘 볼 때마다 설레는 건 무슨 일일까? 어렸을 적에는 tv특선영화로, 조금 지나서는 찾아서까지 보게 되는 영화다. 하도 많이 봐서 다음 장면이 뭔지 아는 데다 웬만한 대사들은 읊을 수 있을 정도다.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면서 뉴욕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게 진짜 크리스마스 풍경이구나 생각했다. 눈 쌓인 뉴욕의 거리, 고급스러운 호텔, 던칸 장난감 가게, 센트럴파크, 록펠러센터의 커다란 트리. 비행기를 타본 적 없었을 때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장면까지 부러웠다. 두 시간 내내 배경으로 흐르는 크리스마스분위기 물씬 풍기는 ost도 빼놓을 수 없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의 뉴욕 풍경 때문에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된 것 같다.


아이들은 케빈이 도둑을 물리치는 장면을 기다렸다. 그 장면이 다소 가학적인 것 같아 마음이 쓰이다가 그냥 아이들과 함께 웃기로 했다. 어리숙한 두 도둑이 케빈의 꾀에 넘어갈 때마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웃어댔다.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영화를 두 아이와 함께 보고 있다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말썽꾸러기 케빈은 록펠러센터 트리 앞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Would you please tell him that instead of present this year, I just want my family back.
산타 할아버지한테 올해는 선물 대신 제 가족을 돌려달라고 전해 주세요. 

진심이 담긴 케빈의 기도가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엄마와 케빈이 록펠러센터 트리 앞에서 만나는 장면을 비로소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올해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트리보다 주인공 엄마에게 눈길이 갔다.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영화를 봐야지 했다가 결국은 보게 되는 '나 홀로 집에'. 내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고민 끝에 '나 홀로 집에'를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어려선 본 영화를 똑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보는 유일한 영화인 데다 내 추억 더하기 아이들과의 추억까지 차곡차곡 쌓여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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