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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31. 2022

아홉 살 롤링페이퍼와 편지

"엄마, 예쁜 롤링페이퍼 종이 뽑아주실 수 있나요?"

"뭐 하려고?"

"마지막 날 담임선생님 드리려고요."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냈고, 그 말에 첫째가 엄마에게 부탁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온 모양이었다. 아홉 살 아이들의 그 마음이 곱고 예쁘서 흔쾌히 허락했다. 학생 수에 맞춰 칸이 나눠져 있는 예쁜 롤링페이퍼 종이를 인쇄해서 가져다주었다. 아직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전인데 첫째의 어깨가 으쓱하다.


다음 날 첫째는 아이들의 글씨가 담긴 롤링페이퍼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선생님께 감사하다, 또 만나고 싶다는 말들이 담긴 연필 글씨가 가득했다. 언제 이걸 다 썼냐는 물음에 중간놀이 시간과 점심시간에 돌아가면서 썼는데 혹시 선생님이 들어오실까 걱정되어 몇몇 친구는 망을 보고 있었단다. 오늘 결석한 친구 세 명 빼고 다 썼다고 했다.


첫째가 물었다. "엄마, 코팅지 사다 주실 수 있어요?" 코팅기가 있다는 걸 모르는 첫째는 코팅지만 있으면 집에서 코팅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나 보다. 도와준 김에 끝까지 해주자 싶어 결석한 친구들까지 다 쓰면 코팅까지 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결석한 친구 칸까지 글씨가 채워지고, 첫째와 약속한 대로 코팅을 해서 가져다주었다. 첫째는 나에게 담임선생님 역할을 해보라고 하면서 롤링페이퍼를 주는 연습을 했다. 

"선생님, 저희가 선생님을 위해 준비했어요."

"어머, 이걸 언제 준비한 거야. 너무 감동적이다."

나는 내가 받은 것처럼 연기를 했다. 첫째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간 웃음을 띠었다. 


내가 첫째 선생님이라고 해도 깜짝 놀랄 이벤트다. 아홉 살 아이들이 저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 마음이 예쁘고 대견하다. 담임선생님께서 그만큼 아이들에게 정을 담뿍 주신 덕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안다.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말이다. 


다음날 나도 편지를 받았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후 교탁에 편지가 한 통 놓여있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아 선생님과 헤어질 것이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한 아이의 성정이 편지에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친절한 선생님이라는 칭찬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홉 살 아이들의 순수하고 고운 마음이 우리 교실에도 첫째 아이의 교실에도 가득한 것 같다. 


그런 희망으로 내년 새 학년을 준비할 힘을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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