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하루 Jan 07. 2023

화요일은 받아쓰기 시험 보는 날

우리 반 월요일 알림장 1번은 '받아쓰기 O급 연습하기'로 시작한다. 화요일 2교시에는 어김없이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받아쓰기를 보는 교실에는 약간의 긴장과 적막이 감돈다.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를 쓴 아이들은 가만히 내 입을 쳐다본다. 단어가 조합된 10개의 문장 중에 한 개를 골라 천천히 두 번씩 불러준다. 띄어쓰기가 있는 부분은 한 템포 쉬어 아이들이 띄어쓰기 때문에 틀리지 않게 한다. 늘 왁자지껄한 소란함이 가득한 교실에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한 개의 문장을 모두 쓸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준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연필을 자신 있게 놀리는 아이,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헷갈리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 어떤 받침이었는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마지막 10번까지 다 불러주고 나면 연필과 지우개를 필통에 넣고 기다리게 한다. 끝에 앉은 아이가 공책을 가져가고 나면 아이들은 다시 부산해진다. 받아쓰기 급수표 종이를 꺼내 서로 답을 맞춰보느라 바쁘다. "맞았다!", "아! 틀렸네.", "이번에도 100점 못 맞겠다."와 같은 말들이 떠다닌다.


같은 날 첫째의 알림장에도 '받아쓰기 O급 연습하기'가 있다. 첫째도 매주 화요일에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우리 반이 받아쓰기를 보는 요일과 같아 반갑기도 하고, 잊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 월요일 저녁이면 나는 받아쓰기 급수표를, 첫째는 10칸 공책을 앞에 두고 앉는다. 첫째 선생님은 1번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불러주시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단어를 불러준다. 아이는 내 말을 듣고 칸을 채워간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그렇듯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용히 글씨를 쓴다. 틀린 부분은 다시 보고 써보도록 해서 다음 날 실수하지 않게 한다.


화요일 알림장은 '받아쓰기 부모님 사인 받고, 틀린 것 2번 써오기'라고 쓴다. 첫째의 알림장은 틀린 것을 3번 쓰는 것만 다르다. 아이들의 부모님이 사인을 하고 틀린 것을 보고 잔소리를 하는 것처럼 같은 시간 나도 같은 표정으로 첫째의 시험지에 사인을 한다.


나와 첫째 선생님은 다 맞은 시험지에 달팽이무늬 같은 나선형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준다. 맞은 개수나 점수는 써주지 않는 것도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선생님은 10번까지 순서대로 불러주시고 문장부호까지 친절히 불러주시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 반 아이들 받아쓰기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 같다. 좀 더 긴장하고 공부하길 바라는 내 마음과 많이 맞기를 바라는 첫째 선생님의 미묘함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첫째는 다 맞은 날 의기양양한 표정을, 틀린 날은 받침이 어쩌고저쩌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선생님이 쉽게 불러주시는 첫째 아이 반 친구들이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간 횟수가 더 많겠지. 다음에는 나도 달팽이 무늬를 더 많이 해줄 수 있도록 쉽게 불러줘야지 생각한다.


월요일 밤이면 천천히 단어를 읽는 우리 반 아이들의 부모님의 얼굴로 나도 첫째에게 천천히 단어를 읽어준다. 화요일 밤이면 달팽이 무늬를 보고 환하게 웃는 부모님들처럼 나도 같은 얼굴이 된다.


월요일과 화요일이 되면 틀리기 쉬운 단어들을 꼭꼭 천천히 읽으며 나는 선생님 마음이 되었다가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가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홉 살 롤링페이퍼와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