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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08. 2023

하이파이브, 악수, 포옹

2학년 교실의 종업식 풍경

교사의 한 해 끝은 12월 31일이 아니라 1년을 함께 보낸 아이들과의 마지막 날이다. 해피뉴이어를 외치고도 며칠을 더 만난 후에 종업식 날이 되었다. 교실을 비워줘야 하는 형편이라 며칠 전부터 구석에 숨어 있던 짐들을 버리고 정리하며 보냈다. 알록달록 아이들 그림으로 채워졌던 환경판 그림도 떼고, 올해의 약속을 붙여 두었던 앞쪽의 글씨들도 정리하고 나니 교실이 색을 잃었다.


종업식을 하는 날 아침은 마음이 차분하다. 성격 탓인지 환하게 웃으며 밝게 헤어지는 일이 어렵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뱃속에서 뭔가가 출렁거린다. 기쁨의 얼굴이 성격 뚜렷하고 뾰족한 것이라면 슬픔은 젤리 같은 말랑한 형태일 거라고 생각한다.   


겨울 방학을 앞둔 아이들은 기쁨이 가득하고, 종업을 앞둔 나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개운함, 기특함, 후련함, 아쉬움, 슬픔, 미안함, 서운함 같은 것들.


"우리 반 모두 아무 일도 없이 3학년으로 진학하게 된 것 축하해. 그동안 너희는 모르겠지만 많이 성장했단다. 처음에 한 문장 쓰기도 어려워했었고, 발표도 조그맣게 했었는데 지금은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해내잖아? 체험학습, 축제 같은 재미있는 일들을 처음 함께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것도 참 좋았어. 3학년이 되면 또 얼마나 많이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그동안 고마웠어."


뒷문에 서 있을 테니 하이파이브, 악수, 포옹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고 했다. 몇 해 전까지도 아이들 머리도 쓰다듬고, 안아주기도 했었는데 그게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오해를 일으킬까, 바이러스를 옮길까 주저하면서 아이들을 힘껏 안아줄 수 없었다. 


몇몇 아이들은 하이파이브와 악수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포옹을 선택했다. 아이들을 꽉 껴안자 가슴께에 아이들 머리가 닿는다. 우리 아들과 비슷한 키다. 아이들 머리에서 달큼한 땀냄새가 배어 나왔다. 있는 힘껏 내 허리를 감싸 안는 아이들 모습에 코끝이 시렸다. 여린 여자아이는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그 고운 마음이 예쁘고 기특했다. 


하루 내내 파도치는 배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뱃속이 일렁였다.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일렁임이다. 


하루 뒤에 종업식을 하는 첫째 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을 안아드리고 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첫째는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꼭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이들 눈을 보면, 뒷모습을 보면 그런 게 보인다. 

개구리가 피부로도 숨을 쉬듯 아이들은 말로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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