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겨울방학을 하는 날이다. 종업식을 하고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를 한다. 할머니께 등교할 때부터 점심 메뉴를 물었나 보다. 소여사는 고민 끝에 점심 메뉴로 김치전을 골랐다.
소여사는 아이가 하교할 시간에 맞춰 미리 반죽을 해놓고 기다렸다가 김치전을 따뜻하게 부쳐주셨다. 이번에 산 오징어가 제법 크다고 하시더니 김치전 사이사이 하얀 오징어 몸통이 쏙쏙 박혀있다. 바삭한 테두리를 특히 좋아하는 첫째를 위해 소여사는 전의 가장자리를 알맞게 찢어 아이 입에 넣어준다. 첫째는 아기새가 모이를 받아먹듯 할머니가 주는 김치전을 잘도 받아먹는다.
어렸을 때 겨울방학이면 매일매일 느슨한 하루를 보냈다. 뜨뜻한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다 뒤늦은 아침을 먹고 재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바보상자를 붙들고 시간을 보냈다. 세계 제일의 스포츠로 그려진 피구와, 세계 최고의 피구선수 통키가 나오는 만화였다. 피구라는 게 저렇게 멋진 스포츠였던가. 왜 올림픽에 피구라는 종목이 없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곤 했었다.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오프닝 곡을 따라 부르고, 통키가 불꽃슛을 쏘아대는 통쾌한 장면에 빠져 넋을 놓고 있으면 집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피어났다.
소여사는 오징어가 듬뿍 들어간 김치전이 담긴 접시와 젓가락을 바닥에 툭 놓고 갔다. 그 순간 시각에 집중되어 있던 감각이 미각으로 옮겨간다. 뜨거울까 후후 불어가며 김치전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눈은 다시 통키에게로 향했다. 만화를 보면서 김치전을 먹는 그 순간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재밌고, 맛있고,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아삭한 배추김치가 씹히고 기름에 바삭하게 구워진 김치전이 먹고 싶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 안에서 게으르게 먹고 싶은 음식이다.
나에게 김치전이 통키를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어른이 된 첫째는 김치전과 어떤 것이 함께 떠오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