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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Feb 01. 2023

거북이랑 살아요

단풍이 이야기

깜박 잠이 든 토끼를 이긴 우직한 거북이가 등장하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아시죠? 그 이야기에 나오는 거북이의 모델인 '동헤르만 육지거북'이 우리 집에 살아요. 집에서 기를 수 있는 거북은 수생 거북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테죠.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따뜻한 곳에서 자라야 해서 30도 온도가 유지되는 직사각형 사육장에서 자라요.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지 몇 바퀴째 계속 돌고 있어요. 꽤 빠른 속도로요. 거북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엉금엉금'이라는 의태어가 어울리지 않게요. 직진으로 가다가 모서리를 맞닥뜨리며 앞발로 벽을 올라타기도 해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출구를 찾는 건가 싶기도 해요. 작은 사육장에 갇혀 있으려니 답답하겠지요. 그러다 목을 쭉 빼고 생각에 빠진 것처럼 멍하게 있을 때도 있어요. 운동을 하다 지치면 조용히 은신처로 들어가서 잠을 자요.


10월 말, 가을산에 단풍구경을 가던 날이에요. 돌아오는 길에 거북을 입양하기로 했던 터라 두 아이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거북의 이름을 정한다고 옥신각신 다퉜어요. 여러 이름 후보가 등장했고 여러 이유로 채택되지 못할 때 둘째 아이가 단풍이 어떠냐고 했어요. 눈앞에 빨간 단풍나무가 서 있었거든요. 단풍이. 단풍이 들었을 때 만났으니 단풍이. 우리 집에 오는 특별한 날짜를 기억하기도 쉽고, 빨간 느낌이 드는 이름이 참 예뻤어요. 가족 모두 찬성하여 그렇게 단풍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답니다.


세 달이 지나고 단풍이는 91g이던 몸무게가 100g이 되고 등갑도 더 커졌어요. 아침이면 어서 밥 달라고 앞쪽으로 고개를 빼고 있기도 해요. 강아지처럼 만질 수도 없고, 애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그렇게 조금씩 교감을 하고 있어요.


단풍이가 가장 예쁠 때는 먹이를 먹을 때에요. 치커리, 아욱같은 잎채소를 먹는데 조그만 입으로 우적우적 먹는 모습이 신기해요. 먹이를 내려놓으면 냄새를 맡고 빠른 엉금엉금으로 기어와서 앞발로 잎을 누르면서 먹어요. 닭다리 살만 발라먹듯 줄기는 쏙 빼놓고 잎만 잘 골라 먹어요.


자연에서 살았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가도 어차피 누군가에게 입양되어 키워질 인생이었다면 우리 집에서 좀 더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거북의 수명은 30년 정도라고 해요. 그 말을 듣고 입양이 망설여지기도 했어요. 3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담스러웠거든요. 그 긴 시간 잘 돌볼 수 있을지, 30년 후의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 형편에 돌봐줄 생명을 들여와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첫째에게 장가를 가더라도 단풍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확답을 얻은 후에야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치커리를 좋아하고,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목을 쏙 집어넣어버리고, 벽 타기를 잘하는 귀여운 거북이 우리 집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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