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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Feb 01. 2023

자동 목소리 변조

친절에 대하여

같은 성씨를 가진 셋이 편을 먹고 나를 놀려 먹을 때가 종종 있다. 넷이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걸려온 전화를 끊고 나니 첫째가 말했다.

"엄마는 전화받을 때 목소리가 바뀌더라? 마지막에는 꼭 네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둘째가 보탠다.

"맞아. 뭔가 더 친절해. 우리한테는 안 그러면서."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우리한테도 그렇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우리한테 말하는 거랑 많이 다르긴 하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뭐, 어떡하라고. 전화 오면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데!" 하고 말았다.


사람에게 한 가지 면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나에게 여러 인격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셋이 지적한 것처럼 전화를 할 때와 같이 타인을 응대할 때 내가 생각해도 지나치게 친절한 경향이 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인 걸까? 직업 특성상 전화로 이야기할 때가 많아서일까?


평소보다 좀 더 높은 음의 목소리와 친절한 말투, 눈웃음까지. 자동으로 장착되는 무기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고 때로는 감정노동처럼 피곤함을 느낄 때도 있다.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다 생각한다. 내가 남에게 하는 친절함은 내가 받고 싶은 친절함인 거라고. 맛집에서, 유명한 의사가 있다는 병원에서 기분 나쁜 불친절함을 느낀다. 귀찮은 존재로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밝고 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가 몹시도 그리워지는 것이다.


반대로 콜센터 상담직원의 친절함은 안쓰럽다. 조금 덜 친절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되려 내가 더 밝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에는 "감사합니다."를 더 친절하게 외친다.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건만 어떤 상담원은 "네, 고객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기도 한다.


가족들이 놀리는 나의 친절한 가면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내 에너지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자조해 본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반성을 해보고, 그러지 말자 다짐해도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면 자동으로 한 톤 높은 친절한 말투가 장착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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