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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Feb 01. 2023

병원 화분들은 왜 힘이 없지?

어서 물을 주었으면 좋겠다

새해부터 병원 투어를 하느라 바쁘다. 월요일에는 치과. 간호사의 손짓에 따라 진료 의자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한 시간이 넘도록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면서 지쳐가던 중이었다. 의자가 윙 올라오고 잠시 기다리라는 말에 앞을 보니 화분 여러 개가 보였다.


00 치과 최고, 00 선생님은 믿을 수 있지 등등 응원문구가 담긴 예쁜 리본이 달린 화분들이었다. 얼마 전 병원을 이전하면서 받은 것들인가 보다. 잎이 쳐지면, 일주일에 한 번 등과 같이 물을 주는 횟수가 적힌 팻말이 귀엽게 꽂혀 있다. 그런데...... 화분들이 어째 모두 힘이 없다. 잎들은 축 늘어져있고, 어떤 것들은 잎이 노랗게 시들었다.


화요일에는 외과.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의사 선생님 진료이다 보니 보통 2~3시간은 걸린다.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을 읽으며 지성인의 유머에 감탄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바퀴 달린 물받이 위로 내 허리깨쯤 올만큼 커다란 화분들이 즐비하다. 역시 여기도 핑크색 고운 리본들이 묶여 있다. 저마다 의사에게 건네는 감사, 축하의 말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곳 화분들도 치과에서 만난 화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목이 마른 듯 잎들이 늘어져있고, 어떤 것들은 아예 생을 다 한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 있는 화분은 다 그런 것일까? 의사는 지인이 보내온 화분을 받아 들고 리본에 써진 글씨가 앞으로 오도록 돌려가며 잘 보이는 곳에 놓았을 것이다. 처음에 초록빛을 머금었던 잎들이 시들어도 물을 줄 틈이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물을 주려다가 사소한 일에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간호사 역시 물을 줄 때가 되었나 싶었다가 내 일도 아닌데 뭘 하고 못 본 척했을 것이다. 나는 물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하고 말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모두가 내 일이 아닌 척 외면했을 것이고 화분은 목이 마른 채로 시들어 간 것 같다.


나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마음이 선할 거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초록빛 잎이나 꽃으로 기쁨을 주는 조용한 존재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이라면 분명 고운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대학교 때 한 선배가 산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면 된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식물을 잘 가꾸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던 덕분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를 생각이 믿음으로 굳어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며 잠시 화분에 눈길을 주고 물을 주는 의사는 어떨까? 어쩐지 환자를 따스하게 치료해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식물이 건네는 초록빛 미소가 의사의 마음을 촉촉하게 다독여줄 테니까.


공포스러운 소리 가득한 치과에서, 혹여나 나에게 큰 병이 찾아온 건 아닌지 마음 조리는 병원에서 식물이 내뿜는 싱싱한 생명을 마주한다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될 것이고, 삭막하기만 한 장소에 초록의 여유를 줄 것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물조리개로 화분에 정성껏 물을 주는 의사, 초록의 에너지를 얻은 손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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