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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31. 2023

불운과 행운 사이

주차된 차가 공업사에 들어간 사건

"관리사무소예요. 0동 0 호시죠?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보셔야 되겠어요. 입주자분이 차를 긁었다고 연락을 하셨어요."

주차를 하다 차를 조금 긁었나 보다 생각하고 주차장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고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주차된 차 주위로 검정, 빨간색 플라스틱 파편들이 나뒹굴고 내 차의 오른쪽은 타이어 휠까지 한 군데도 성한 곳 없이 모조리 긁혀 있었다. 앞문과 뒷문 사이는 선명하게 파여 들어가기까지 했다. 내 차를 긁은 것으로 보이는 차는 뒤쪽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내 차를 긁은 것인지 알 수 있게 뜯겨나가 있었다. 사고를 낸 사람으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휴대전화를 붙잡고 전화를 하느라 내가 곁에 온 줄도 몰랐다.


그 곁에서 서서 핸드폰 카메라로 증거를 남기고, 남동생과 남편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전화를 마친 뒤에도 중년 부인은 전화번호부를 눌러서 누군가를 찾으며 중얼거리기만 하고 일이 진척되어 보이지 않았다. 보험회사가 어디인지 물어도 남편이 가입을 해서 잘 모르겠다며 아들과 남편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전화만 걸고 있었다. 급히 내려온 터라 외투만 걸치고 나와서 손발이 시렸다. 몇 분 뒤 보험회사 긴급출동이 오기로 했다고 했다.


중년 부인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사고 내용을 말씀하셨다. 손주를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기둥에 붙여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본인은 액셀을 밟지 않았는데 차가 뒤로 가서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주자방지턱을 넘어 내 차를 저렇게 긁은 걸로 보아 후진기어를 넣고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액셀을 밟은 것으로 보였다. 부인은 그때까지도 사고 여파가 남은 듯했고, 말도 횡설수설했다. 


나 역시 초보 때 주차를 하며 다른 차를 긁어 본 일(심지어 버스도 있음)이 있기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리는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왜 그랬냐는 물음도, 타박도, 따지지도 못했다. 그냥 조용히 출동 기사를 함께 기다리고 사진을 찍고,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서 있었다.


출동 기사가 오고 접수번호를 받고, 딜리버리서비스(사고 차량을 가져가고 렌트차를 가져다준다. 오! 처음 알게 된 서비스......좋다.) 안내를 받았다. 출동 기사가 도착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그제야 사고를 낸 부인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사진을 본 남편은 크게 놀랐다. "주차된 차를 저렇게 할 수 있다고?"를 몇 번이나 외쳤으니까.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야 나도 정신이 들었다. 지금 내 차는 부서져서 공업사에 들어갔고, 나는 당분간 낯선 차를 운전해야 하고, 관리사무소에 차량 등록도 새로 해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상에 끼어들어 시간을 빼앗았고, 내 차는 사고차량이 되었으며, 당분간 초보운전자처럼 렌터카를 운전해야 하는 일 등의 번거로운 일 리스트가 주르륵 머릿속에 떠올랐고 짜증이 났다.


살면서 여러 사고를 겪어 보았지만 늘 사고는 갑자기 일어나고 황당하다. 그 순간 대처는 예상과 다르게 미진하고 머피의 법칙처럼 재수 없게 나만 그 일을 당하는 것 같은 억울함이 밀려든다. 


남편은 운전을 하다 어디 가는 중에 그랬으면 얼마나 크게 다쳤겠냐며, 다치지 않은 걸로 위안을 삼자고 했다. 남편 말처럼 내가 차 안에 타 있고, 차가 저렇게 될 정도로 크게 부딪쳤다면 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야 했을 것이다. 내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행운이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을 조금만 비틀자 불운이 행운이 되었다.


공업사에서는 3주 이상 소요될 거라고 했고, 수리비는 600만 원 이상 나온다고 했다. 차는 수리되어 나올 것이고, 또 언제 사고가 났었는지 잊은 채 운전을 하고 다닐 것이다. 


1월이 가기 전에 올 한 해 액땜을 제대로 한 셈 치자. 나는 멀쩡하니까, 그걸로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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