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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28. 2023

귀경 체험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설 연휴 마지막 날, 다음날로 예정된 서울 여행 일정을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새벽부터 내린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에 발목이 잡힐 것 같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서울에 9년 만의 강추위가 찾아온다는 예보 때문에 며칠 전부터 계속 일기예보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눈까지 내리니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한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었다. 날씨를 핑계로 취소하자니 그간 날짜를 세며 기다리던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강행하기로 했다.


막상 집을 나서니 큰길은 제설이 잘 되어 있었고,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눈발이 약해졌다. 서서히 걱정이 걷히고 떠난다는 마음에 신이 났다. 야트막한 동산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지붕 위로 고운 체에 거른 듯 고운 눈이 슈가파우더처럼 덮여 있었다.


휴게소에 들러 주전부리를 샀다. 따뜻한 호두과자는 팥앙금이 달콤했고, 아이들은 입술 양쪽에 양념을 묻혀가며 닭꼬치를 먹었다. 차 안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가족들의 달뜬 기분으로 가득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아이들 소리가 잠잠해졌다. 아이들이 까무룩 잠들자 어느 구간부터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고속도로는 서 있는 차들의 브레이크등의 빨간 불들로 가득했다.


친정은 걸어서 10분, 시댁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보니 명절에 막힌 고속도로는 뉴스에서나 보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정체된 고속도로에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처럼 뒷자리에 앉았을 적을 떠올려 보았다. 할머니댁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외할머니댁은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었다. 할머니댁을 갔다가 외할머니댁을 순서대로 갔다. 외할머니댁에 갈 때는 슈퍼에 들러 좋아하는 과자부터 샀다. 과자를 안고 뒷자리에 앉으면 신이 났다. 차 안이 방인 것처럼 동생과 이런저런 놀이를 하다가 과자를 먹다 하면 읍내가 나왔다.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고기도 사고 술도 산 다음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면 장작, 거름 냄새 피어나는 외갓집 마을로 들어섰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외할아버지 양팔은 어서 달려와 안기라는 듯 활짝 펼쳐 있었다.



자식들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해놓고 언제 오려나 밖을 내다보고 계실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귀향하는 길은 막히더라도 넉넉한 마음이지 않을까. 차에 흘리지 말라고 꽉 매듭지은 봉투에 담긴 부모님 음식을 트렁크 가득 싣고 돌아가는 마음은 그 반대일까.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가는 길은 안도감일까 서운함일까. 고속도로에 서 있는 차들의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며 겪어보지 않은 마음을 짐작했다. 괜히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도로가 넓어지고 높이 솟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서울에 들어섰다. 무사히 도착했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소여사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다.

"차 조심하고 애들 손 잘 잡고 다니고 감기 안 걸리게 꽁꽁 잘 싸매야 한다. 알았지?"

익숙하고 반가운 걱정 담긴 잔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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