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하루 Jan 18. 2023

숨 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필라테스 수업을 듣다 보면 강사는 숨 마시고, 숨 내쉬고를 번갈아 말하며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유도한다. 강사의 말에 따라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평소와 다른 부자연스러운 호흡을 느낀다. 열까지 세는 그 시간이 너무 길어 들숨과 날숨이 엉켜버리기도 한다. 의식하지 않았던 호흡을 의식하며 조절하려니 그런 것이다. 1분에 12~20회를 한다는 호흡을 평소에는 느끼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의식도 못하고 수고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호흡을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이가 있다. 아프지 않았던 모습이 흐릿하게 기억날 정도로 오랜 시간 투병을 해온 이모다. 얼마 전부터는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 곁에 하얀 에코백과 까만 가방이 놓여 있었다. 까만 가방은 크기는 작지만 무게가 꽤 나가는 휴대용 산소호흡기였다. 까만 가방 몸체에서 이모 코로 연결된 콧줄을 보자 까만 가방의 역할이 피부로 와닿았다. 시력을 위한 안경이나 청력을 위한 보청기와 다른 까만 물건은 낯설면서도 크기에 비해 존재감이 무거워 보였다. 이모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 자리를 잡고 방전되지 않도록 콘센트에 충전기부터 꽂았다. 


이모는 산소호흡기를 하게 되면서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도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고 했다. 산다는 것의 기본인 숨 쉬는 것을 기계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고 숨이 멎을 수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집에서만 머물다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가지고 간간이 외출을 시작했다.


나도 산소호흡기를 딱 한 번 써본 적이 있다. 첫째를 출산하면서 탯줄이 아이 목을 감고 있어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아이는 탯줄로 연결되어 내가 산소를 들이마셔야 아이도 함께 숨을 쉴 수 있었다. 순식간에 코에 끼워진 산소호흡기는 상황의 긴박함을 말해주는 물건이었지만 코에 넣었을 때의 이물감은 생경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모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넬 수 없었다. 언제고 생이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살고 있는 사람 앞에서 내가 가진 고민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것,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 그까짓 고민들을 할 수 있는 것조차 이모에게는 부러운 일상인 것이다. 이모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머릿속으로 걸러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힘겹게 이야기하는 이모에게 힘내라, 잘 될 거라는 이야기도 새털처럼 가벼워 차마 꺼내지 못했다.



어느 날엔가 흘려들었던 라디오 디제이가 그랬다. 싫은 것에는 수많은 이유를 갖다 댈 수 있다고. 나는 언젠가 수업 시간에 책에서 읽은 구절을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너희가 보내는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꼭 살고 싶은 내일이었을 거라고. 그래놓고, 그래놓고.


너무나 많은 핑계와 이유를 찾아가며 투덜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을 살아가며 당연하게 하는 모든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생각한다. 사람은, 특히 나라는 사람은 다른 이의 불행을 보고 나의 행복을 엿보며 안심한다. 거창한 것들을 제쳐두고서


숨 쉴 수 있는가? 그걸로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 뜻밖의 안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