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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15. 2023

뜻밖의 안부

잘 지내고 계신가요?

박준 시인은 인간관계의 소멸과 죽음을 같은 그릇에 넣고 말했다. 일상을 살다 보면 만나는 사람이 가족, 오래도록 관계가 지속된 이들, 약속된 시간 안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에 국한되기 마련이다. 잠시 여유라는 것이 찾아오면 고마웠던 이나 마음이 잘 통했던 이, 이유는 모르지만 기억이 나는 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쉽사리 전화 걸지 못하고 애꿎은 전화번호부만 스크롤을 내려본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전화를 걸어 나야, 잘 지냈어? 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용기도 저만치 달아나는 탓이다.


나른한 주말 오후를 보내다 낯설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이름 석자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상대 역시 목소리가 그대로라며 기꺼운 인사를 건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첫 발령지에서 함께 6학년을 가르쳤던 동료였다. 전화를 해온 이는 같은 학년을 했던 나머지 두 명의 안부를 살뜰히 전해주었다. 그 순간 이십 대 중반의 열정 가득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동료는 부장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고 나서 넷이 모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나에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약간의 주저함이 들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단단한 심지가 뿌리내리지 못한 채 타오르기만 한 촛불 같았다.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을 10여 년 만에 만난다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웠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궁금한 사람의 안부를 묻고, 또 오랜만에 만나자고 말하는 그 사람의 용기 덕분에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때의 학교, 함께 했던 사람들, 힘들었던 일이나 졸업식 에피소드 같은 것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 첫 졸업식에서 너무 울어서 코까지 빨개진 시간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오늘 전화를 받고 알았다. 내 전화가 누군가에게 어색함이나 부담을 줄까 머뭇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저 잘 지내고 있냐고,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말이다. 


인간관계의 소멸이 슬프다면 한 번쯤 용기 내어 먼저 전화를 걸어보자.

"잘 지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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