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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13. 2023

감패:때맞추어 흡족하게 쏟아지는 단비

비가 이토록 반가울 줄

지난밤 겉흙을 적실 정도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보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창에 빗방울이 맺혀 있고, 땅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생겨 있다. 오랜만에 내린 비를 보고 나도 아이들도 반색했다. 첫째와 도서관에 가는 길에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라디오에서는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조수석에 타고 있는 첫째가 "와이퍼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더없이 동감!


몇 십 년 만의 가뭄이라고 했다. 작년 말부터 안전 안내 문자에서 물을 아껴 써야 한다며 식수로 쓰이는 댐의 저수율을 하루에 한 번씩 안내하고 있다. 여태껏 마시고 씻는 데 부족함이 없이 물을 써왔는데 매일 단수율을 보며 단수를 걱정해야 하는 일은 고단했다.


얼마 전 대설 때도 눈이 내려 반가운 것보다 눈이 녹아 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막상 눈이 녹아 물이 되는 양은 몹시 적다고 한다. 눈과 비가 내가 먹을 물이 되고 씻는 물이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오늘 촉촉이 내리는 비가 반갑지 않겠는가. 심지어 웅덩이를 지나던 차가 빗물을 튀었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차 유리를 뿌옇게 만드는 습기며 우산을 써도 옷이 젖는 불편함을 투덜거렸을 것이다. 혹은 빗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젖어 있었겠지. 불편하거나 감상적이기만 했던 비가 현실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물을 아끼기 위해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일을 하고 있다. 양치컵을 쓰고, 비누를 묻힐 때는 세면대 수전을 내린다. 머리를 감으려고 물을 틀었다가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흘려 버려지는 물이 아까워 양동이에 받아 두었다가 변기 물로 쓴다. 샤워를 하면 추워서 징징거리는 둘째를 위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주는 일도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얼른 해줄게 라는 말로 아이들을 달래가며 후다닥 목욕을 마치고 나온다.


단수가 되었을 때의 불편함을 상상하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물을 낭비하며 살았다는 것을 반성한다. 최정화는 '비밀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에서 물을 아끼기 위해 화학 제품을 쓰지 않고 세숫대야를 사용한다고 한다. 심지어 세탁기도 없이 손빨래를 한다고 했다. 환경을 위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자성하게 만들었다.




단비라는 말로도 뭔가 아쉬워 다른 낱말이 있는지 사전을 찾아보니 비슷한 말로 '감패'가 있었다. '감패'는 때맞추어 흡족하게 쏟아지는 단비라고 한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는 것처럼 꼭 들어맞았다. 감패, 감패 입에 붙도록 중얼거려 본다.


오늘 내린 감패가 목마른 나무와 밭작물 해갈을 돕고, 응달에 미처 녹지 못한 눈도 녹이겠지.

우리는 그 물로 밥을 하고 반찬거리를 씻고, 목마른 아이들에게 먹이고 먼지 묻은 얼굴과 몸을 씻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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