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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11. 2023

카페에서 카페 걱정

8월에 다시 갈게요

아이를 도서관에 내려주고 어제 봐둔 근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꽤 넓은 공간인데 이른 시간 때문인지 사람이 없었다. 생기발랄해 보이는 여자 사장님이 주문을 받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볕이 드는 창가로 앉았다. 어제 대출한 책을 막 펼쳐들자 커피와 버터쿠키가 담긴 쟁반이 테이블에 놓였다. 진동벨이 아니라 직접 가져다주는 소소한 친절이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견과향이 나는 고소하고 진한 커피였다. 따스한 행복이 뱃속에 스르르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사장님, 커피 맛있어요!"하고 외치고 말았다. "어머, 감사해요."라는 기분 좋은 답변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평소답지 않은 씩씩함은 커피가 맛있는 탓이라고 생각하며 멋쩍은 느낌을 떨쳐버렸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뭔가 허전했다는 느낌이 꽉 채워졌다. 이제 모든 게 완벽해졌다.


다른 손님이 없는 탓에 마스크를 벗는 마음이 편했다. 책을 읽으며 커피를 홀짝이며, 간간이 쿠키를 베어 물며 행복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행복감이 미안함과 불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머무는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부엌 쪽에서 잘그락잘그락 소리만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들어와 테이크아웃이라도 하지 않을까 창밖을 기웃거려 봐도 사람들은 무심히 제 갈길만 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가게를 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챙기고 나왔을 텐데 여태 3,000원을 벌었다고? 여기 전기세는, 수도세는, 가겟세도 비쌀 텐데...... 괜찮을까?


사장님 인상도 좋으시던데, 가게 안에 화분들도 잘 가꾸는 걸 보니 선한 사람 같은데, 인테리어가 세련되지는 않아도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좋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는데...... 없어지면 어쩌지? 남은 30분을 카페 걱정을 하느라 읽던 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초록, 파랑, 노랑의 색으로 간판을 칠하고 본사에서 공급한 같은 원두로 커피를 만들어 파는 카페가 넘쳐난다. 나 역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보다 맛이 일정한 프랜차이즈 커피를 애용한다. 다만 이런 카페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이 물씬 담긴 인테리어, 특색 있는 커피맛, 그 카페만의 분위기와 음악이 있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획일적인 것은 삭막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한 때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화려한 두건을 두른 여사장님은 타로텔러 같은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사근사근함과 거리가 있는 투박한 말투로 툭툭 인사를 건네곤 했다. 카페 조도는 낮고 따뜻했으며 사장님이 모아 전시한 기념품 때문에 신비롭기까지 했다. 음료가 특별히 맛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개성 있는 사장님과 실내의 분위기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카페라면 커피를 마시려고, 잠시 쉬려고, 책을 읽으려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고 가는 곳이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고유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때 사회적 서정은 높아지고, 타자를 이해하는 감수성이 길러질 거라고 했다. 카페마다 다른 분위기와 취향이 있고 카페만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타자를 이해하는 감수성이 부족한 세상이니 말이다.


찾아보니 행정안전부 지방 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7월까지 커피 전문점이 포함된 휴게음식업의 폐업률은 전년도 대비 15% 증가한 1만 2500개란다. 오늘 다녀온 곳은 1만 2500개의 카페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페를 나설 때까지 손님은 없었다.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 간판을 보니 민트색에 가까운 초록 바탕에 8이라는 숫자와 함께 '디 어거스트'라고 쓰여있다. 왜 8월일까. 사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달일 수도 있고, 오픈한 달이 8월일 수도 있겠다. 사장님이 나처럼 8월에 태어났거나.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나오는 길에 카페를 슬쩍 보니 내가 앉은자리에 중년 남자 두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행이다.


아이 도서관 수업이 두 번 남았으니 앞으로 두 번은 더 갈 수 있겠다. 아니, 카페를 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가야지. 8월에는 찰랑찰랑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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