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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11. 2023

근육들의 생존 신고

다시 필라테스

체중이 조금씩 늘고 군살이 붙기 시작했다. 겨울이 시작하고 몇 번의 감기를 거치면서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필라테스 센터에 상담을 갔다. 강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해 전 다녔던 다른 필라테스 센터에서 만났던 강사라는 것을 알았다. 일 년 반 정도 꾸준히 하다가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수강권도 다 쓰지 못하고 그만두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자연스레 등록까지 해버렸다. 언제부터 시작할 거냐는 물음에 "월요일에 하면 덜 아플까요?"라는 엉뚱한 말을 해버렸다.


그렇게 첫날. 오랜만에 딱 붙는 레깅스를 입자니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5분 전에 도착해서 요가 매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여유 있게 나비자세를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벌써 아프면 안 되는데. 살짝 늘렸을 뿐인데 벌써 근육이 당기기 시작하고, 발목이 뻐근하다. 시작도 전에 근육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목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스프링보드를 이용한 동작들을 해나갔다. 자꾸 턱은 들리고 어깨는 힘이 들어갔다. 강사가 손가락으로 쿡쿡 눌러대도 코어에는 쉽사리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호흡은 부자연스럽고 다리 뒤쪽의 근육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강사가 자세를 교정해 주는데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행히 내 옆에서도 비슷한 소리를 내는 동지가 있어 창피함이 덜어졌다. 


일 년 동안 편하게 늘어져있던 근육들이 생존 신고를 해왔다. 다리 뒤쪽, 허벅지 앞쪽, 엉덩이, 아랫배, 양쪽 팔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프면서 기분 좋은 통증이었다. 


여태껏 헬스, 요가, 에어로빅, 방송댄스, 배구 등 여러 운동을 거치면서 정적인 운동이 나에게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주 다니는 한약방에서는 진맥을 하더니 천천히 움직이는 운동이 좋겠다고 했다. 움직임이 큰 운동을 하면 땀이 많이 나고, 흥이 나서 좋은데 정작 운동 후에 꼭 두통이 생겼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강사가 10까지 세는 숫자가 들리고, 비교적 쉬운 동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육들이 아우성치는 필라테스는 매력적인 운동이다. 외유내강이랄까? 강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지만 물밑에선 물갈퀴로 끝없이 헤엄친다는 백조 같달까? 겉으론 안 그런 척 동작을 따라 하지만 속으론 아프다고 소리치고, 강사가 숫자를 일부러 늦게 세는 거 아니냐며 홀로 음모론을 펼치기도 한다. 가끔 숨길 수 없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긴 하지만.



다음 날, 근육들은 더 격하게 생존신고를 해 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느껴지던 통증들은 걸을 때마다 잊지 않고 툭툭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체지방량은 줄고, 근육량은 느는 이상적인 인바디 수치를 기대하며, 다음 운동을 하고 난 후에는 이보다 덜 아프길 기대하며 다음 운동 날짜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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