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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10. 2023

낯선 도서관은 역시 매력적이야

겨울방학이면 도서관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개설한다. 이번 방학에는 첫째를 위해 도자기 체험을 신청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언제나 처음 가는 장소는 조금 일찍 도착한다. 익숙한 곳이 아니라 헤맬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처음 가는 도서관은 언제나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두근두근. 얼마나 클지, 얼마나 책이 많을지, 사람은 많을지, 어떤 냄새가 날지.


여유 있게 도착해서 아이를 강의실에 데려다주었으니 이제 두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다. 강의실은 4층에 있었고 천천히 층계를 내려오며 도서관 탐험을 시작했다. 3층에는 학습실, 노트북을 사용하는 곳, 관장실이 있고 2층에는 종합자료실이 있고 1층은 어린이실과 북까페가 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보다 규모도 크고 짜임새가 있어 보였다.


종합자료실 문을 열자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것만 같다. 먼저 사서에게 몇 권을 대출할 수 있는지 조용히 물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 때문이었는지 사서는 뭔가를 더 설명해주려고 했고,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씩씩하게 돌아섰다. 신간 코너에서 제로이스트와 관련된 책을 고르고, 빼곡히 들어선 서가 사이를 조용히 걸으며 책들과 눈을 마주쳤다.


창을 따라 길게 놓인 책상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전문서적 같은 것을 두고 뭔가를 열심히 끼적이는 사람, 핸드폰만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 잔뜩 짐들을 쌓아놓고 책을 보는 사람. 도서관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해본 것이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타인의 모습이 반가워 티나지 않게 힐끗거렸다.


재미있는 소설책을 고르려 800번대 서가를 왔다 갔다 하며 책기둥을 훑어 나갔다. 신중하게 김혜진의 소설 한 권을 고르고 안희연 시집을 검색했다. 지난밤 안희연의 '단어의 집'을 읽고 나서 작가의 시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단어의 집'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새로운 낱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낯선 낱말의 뜻을 공책에 적어가며 돌담 사이 빈 공간을 딱 맞게 채우는 돌멩이처럼 낱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시는 어떨까 궁금했다.


몇 권의 시집을 구입해서 읽은 적은 있지만 도서관에서 시집을 대출해서 읽어본 적이 없다. 시집을 뒤적거리다가도 오래된 친구같은 소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학 장르 중에서도 난도가 있달까? 짧은 글을 읽는 동안 여러 의미를 사색해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다. 가볍고 쉬운 사고에 익숙해져 버린 내가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내내 가요만 들어오다 클래식을 들었을 때의 서먹하고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이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시집을 들고 자료실 창을 빙 둘러싼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낮은 주택들과 초등학교, 운동 나오는 어른들이 간간히 내려다보였다. 휴.... 역시나 쉽지 않다. 내 안에서 죽은 나를 다독인다는 것도, 어딜 다녀왔냐고 시에서 묻는 대상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천천히 꼭꼭 씹어 읽어본다. 나의 경험과 감정을 열심히 비춰가며. 도서관에서 처음 대출하는 시집이다. 이로써 나는 오늘부터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는 사람이면서 시집을 대출하는 사람이 되었다.


책 소독기도 새롭다. 집 근처 도서관 소독기는 책을 세워서 넣었는데 여기는 빨래를 널듯 눕혀서 넣는 게 재미있다. 책 소독까지 야무지게 마치고 1층에 있는 북까페에 가보았다. 카페라기에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한적한 공원에 와 있는 것 같다. 벽면에 빼곡한 신문들 때문인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았다. 괜히 그냥 나오기가 뭐 해 자리에 앉아 소설 몇 페이지를 읽었다. 팔랑팔랑 신문지 넘어가는 소리, 스피커폰으로 당당하게 통화하는 목소리를 핑계삼아 북까페를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첫째는 내 손을 잡아 끌고 어린이실로 향한다. 나를 꼭닮은 첫째도 도서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린이실에 들어서서 내가 그랬듯 서가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며 읽을 책들을 찾아 나선다. 머무를 시간을 체크하더니 욕심껏 책을 들고 내 옆에 앉는다. 집에서 못 읽고 대출도 하지 못하는 학습만화책들이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낄낄거리며 본다. 그 옆에서 나도 조용히 대출한 책을 읽었다. 딴 곳에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뚝딱 소설책 한 권을 읽었다.



낯선 도서관, 옆에 있는 아이, 나지막한 대화 소리 그리고 책냄새. 역시 도서관은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 탐색을 마쳤으니 내일은 여기를 늘 다녔던 사람처럼 익숙한 표정으로 들어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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