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보다 축구가 좋은 아들
토요일 11시, 첫째 아이 농구 수업이 있다. 1년이 넘게 배웠더니 이제는 제법 공을 잡고 능숙하게 드리블을 하고, 골도 넣는다.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머리카락이 젖는다. 투명 창을 통해 아이가 코트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농구를 해보라고 먼저 권한 건 나다. 키를 키우는 데 좋은 운동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나의 로망 때문이다.
어릴 적 농구 규칙이나 슛 종류는 몰라도 연고전이나 우지원, 슬램덩크, 강백호는 알았다. 하얗고 길쭉한 팔다리로 코트를 뛰어다니다가 점프를 해서 골대에 골을 넣는 모습은 흡사 무용수의 춤 같았다. 골을 뺏거나 골대에 넣지 못하게 방해하느라 양팔을 쭉 뻗는 것이나 반대로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공을 꼭 쥐고 몸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비트는 모습이 짜여진 안무처럼 우아하다.
다른 구기 종목과 다르게 둘, 셋만 모여도 쉽게 할 수 있고 다른 경기보다 골을 넣는 간격이 짧아 박진감을 느껴진다. 축구가 진득하게 지구력이 느껴지는 마라톤 같다면 농구는 휙휙 빠르게 전환되는 100미터 달리기 같다.
첫째는 농구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았는데 여전히 축구를 더 사랑한다. 야외에서 바람을 가르고 뛰는 게 좋은가보다. 다리에 힘을 주고 축구공을 뻥 차는 그 순간이 좋을 수도. 나는 야외에서 얼굴을 그을리며 운동하는 것보다 실내 코트에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축구, 농구?"를 외치면 여전히 아이는 "축구!"를 외친다. 날이 따뜻해지면 축구를 다시 배워보자 약속을 했다.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자신이 배우지 못했던 아쉬움이나 로망을 실현하려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아들에게 농구, 딸에게 발레인데 두 아이 모두 싫단다. 배우는 사람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나는 넌지시 내 로망이 적힌 카드를 내밀어봤다가 아이들이 마다하면 슬그머니 집어넣곤 한다. 다만 그때 배우지 못해서 내내 남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주려고 한다.
하얗고 긴 팔다리를 쭉 뻗어 골을 넣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로망은 고이 접어두고 축구장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들을 응원해 줘야겠다.
너는 강백호보다 슛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