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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May 10. 2020

야금야금 도전하는 중입니다

 어릴 적 가장 길게 이어진 꿈은 '시인'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선배들과 시를 썼다. 겉멋 조미료가 팍팍 뿌려진 내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술이 당겼다. 술만 퍼마시다가 졸업했다.




 그 후 십 년이 넘도록 책, 글과 나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길을 걷다, 도서관의 '나도 작가 되기' 프로젝트 포스터를 발견했다. 망설이다가 신청 마지막 날 출간 기획서를 보냈고 뽑혔다. 일 년 내내 머릿속은 글 이외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멈추었던 독서도 한꺼번에 하느라 잘 시간이 아까웠다. 글 쓰고 책 읽고 끄적였다가 고치기를 반복했다. 나의 집중은 자연스레 남편과 아이를 향한 방치로 이어졌다. 아내와 누구의 엄마 가 아닌, 내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 짜릿했다. 물론 얕은 필력, 진부한 아이디어와 같은 약점은 시도 때도 없이 괴로웠더라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괴로움조차도  나를 미세하게 성장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망설였던 내 이름 세 글자가 콕콕 박힌 책. <서른여섯, 나와 사랑에 빠지다>가 조용히, 치열하게 만들어졌다. 




 해가 바뀌어 서른일곱이 되었다. 우연히 시작된 도전이 하나 더해졌다. '독립 책방에 책 입고하기'

 내가 결혼 전까지 쭉 살았던 동네, 그러니까 시인을 꿈꾸던 곳, 거기에서 작은 보물 같은 책방을 발견했다. 어쩌다 친정집에 몇 달 눌러앉게 생긴 마당에,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래, 이 책방에 내 책을 입주시키자. 입고 요청 메일을 정성스레 보내고 한동안 기다렸다. 반가운 답변이 도착했다. 책방 사장님께서 말하길, 육 개월 후 남아있는 책은 집으로 보낸다 하셨다. 헉, 고스란히 쪼르륵 다 오면 어쩌지. 그 모습은 차마 못 보겠어. 아빠, 엄마, 동생에게 달려가서 구매해달라 부탁해야 하나. 비굴한 상상까지 하는 사이에 한 달이 지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통장을 확인해보니, 책방 이름으로 입금 내역이 있었다. 남편에게 몰래 산 건 아닌지 슬쩍 떠보았다. 다행히 아니란다. 어느 분이 내 책을 데려갔는지, 무턱대고 사랑스러웠다.




 늘 내 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부족한 부분만 꼬집고 깊이에 대해 따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 책을 입고시켜도 되나?'라는 고민을 할 정도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을 꿈꾸고 야금야금 해낸다.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도, 다시 느리게 걸어 나가는 중이다.

 독립출판으로 힘들게 낸 책이니 잠재울 수는 없다. 책방 어느 한  곳 따스한 빛이라도 쬐게 하고 싶다. 오월의 하늘을 닮은 책방에, 내 책이 놓일 작은 자리가 있단다. 입고 메일을 읽는 내내 손이 가볍게 떨렸다. 이 기쁨에 떨리는 손으로 몇 년 후에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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