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친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가 엄마에게 원했던 것은 나를 응원해주는 것 딱 하나였다. 엄마가 화를 내고 그래서 우리가 싸우게 되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엄마가-다른 사람이 아니라 엄마가-나에게 나의 미래가 달라질 일은 없으며 모든 과정이 조금 빨라지고 순서가 뒤바뀐 것뿐이라고, 나는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걷잡을 수없이 빨리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몸으로 겪어내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 특히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쟤가 앞으로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우려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는 친구들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나는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웃곤 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겨우 스물둘이었고, 갑작스럽게 닥친 모든 변화가 무서웠으므로 한밤중에 깨서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많았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중에서, p106


이 세상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엄마'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엄마'라면 좋겠다.

나의 이십 대는 이런 생각들을 하느라 보낸 시간들이었다.

나의 엄마는 왜 그럴까, 나의 엄마는 왜 친구들의 엄마와 다를까, 뭐 그런 비교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의 기폭,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의 어두운 그늘 하나를 만들었다.


나는 그 벽을 스스로 깨뜨리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 나의 엄마에 대한 미움은 그 이전보다 더 커졌고, 혼란스러웠다.

나의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이쁜 아이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일부러 '엄마'를 멀이 떨어뜨려놓기 시작했다.


그 벽을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건 '글'이었다.

내가 쓰는 '글', 남이 쓴'글'

'글'을 통해 나는 내 스스로를 돌아봤고, '엄마'를 '엄마'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 욕망하는 '여자'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작품 해설을 쓴 신샛별 평론가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매력을 한 마디로 표현해주었다.

"엄마에게. 이 네 글자를 적은 뒤 다음에 쓸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려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친애의 작은 역사, 신샛별)"


「세상의 어떤 말로도 엄마를 향한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형언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이 소설은 적절한 해답 하나를 건네주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속에 차오르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감정들, 애정과 미움, 고마움과 서운함, 동경과 연민의 파고를 감당하면서 이 소설은 엄마에게 해야 할 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그 한마디 말을 빚어내기 위해 진지하게 나아간다. <친애하는 작은 역사, 신샛별>」


이야기는'어린 시절 한 번도 다정한 적 없던(없었던 것 같은) 엄마에게 마음의 벽을 쌓은 '나'와 그에 반해 애정으로 다가왔던 할머니가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나'와 '엄마' '엄마의 엄마(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엄마를, 그 둘의 이야기를 되돌려 봐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늘 바빴던 엄마, 자신의 삶에 응원보다는 질책이 앞섰던 엄마에 대한 원망,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할머니의 죽음, 엄마의 죽음을 앞둔 나의 엄마. 갑작스러운 나의 임신. 이야기는 처음엔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엄마'이자 '여자'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된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열 달. 엄마가 될 준비를 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하는 '엄마'가 되면,이라는 생각과 아이가 태어난 뒤 진짜 '엄마'가 되었을 때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엄마들의 모성애는 아이가, 사회가, 가족들이 만들어 주는, 때론 억울한 것도 같지만, 결국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그냥 하나의 역할이라는 생각.


지금의 나는 딸로는 믿음직한, 엄마로는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역할이다.

물론 평가는 나의 엄마와 나의 딸들의 몫.


다만,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바람 하나는 나의 딸들이 '나'를 떠올렸을 때

'걱정'보다는 '평온'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나요'가 아니라 '엄마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요. 어디서든 잘 지내고 계실 거예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딸들이 되길 바란다.

내가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엄마"

용기를 짜내어 엄마를 불렀다. 엄마라는 말을, 마치 처음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

내가 두 번째 불렀을 때에야 비로소 엄마가 나를 돌아다보았다. 엄마가 화를 삭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내가 엄마의 옆에 가 앉으며 말했다. 엄마가 우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엄마의 눈물을 보자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쩌면 내가 다시 한 번 엄마를 실망시켰기 때문에, 아니면 할머니 문제로 안 그래도 엄마의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에 이렇게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내가 살아오면서 엄마의 속을 썩인 모든 일들 때문에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어요."

나는 재빨리 말했다.

"누가 그랬는데 어차피 겪을 일인데 모든 것이 조금 빨라진 것뿐이래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고도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잖아요. 졸업도 하고, 일도 할 수 있고요. 산부인과 선생님도 출산과 육아를 생각하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낳는 게 더 좋대요. "

이 모든 말이 불필요한 변명처럼 느껴졌지만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말을 하는 내내 고집스럽게, 물이 여전히 3분의 1 정도 차 있는 플라스틱 물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엄마도요, 내가 생겼을 때, 이런 마음이었어요?"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도 엄마는 학업 중이었고, 무엇보다 엄마는 아이를 낳고도 엄마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엄마가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내게 도대체 왜 그런 터무니없는 기대가 생겨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한번 생겨난 그런 기대는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엄마라면, 아기를 낳고도 바로 유학을 갔던 엄마라면 내가 아기를 낳더라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고, 졸업을 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꿈을 꾸고, 계획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형태를 바꿨다. 그때의 나는 이 뜻밖의 임신이 그때까지 엄마에게 서운했던 것들, 나와 엄마를 모두 외롭게 만들었던 우리 사이의 간극을 치유해주기 위해 우리에게 벌어진 사건일지도 모른다고까지 기꺼이 생각하고 싶었다. 엄마와 나에게 생긴 최초의 연결고리.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잘 해낼게요."

나는 정말 엄마가 무언가를 말해주기를 바랐다. 간호사가 옆 병실로 들어서면서, 수액 체크하러 왔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엄마가 제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장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짜 자신의 자아실현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실수로 아기를 갖는 그런 멍청한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그러니까, 아기를 낳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리 없으며, 나는 젊으니까 앞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해주기를. 지금 당장은 이렇게 벌어질 일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벅차 우리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의 선택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엄마도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나라면 예전처럼 도망만 가지 않고 무엇이 되었든 내 미래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그저 물병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엄마는 벌을 받는 사람처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는 그저 그렇게 말했다.

"아니야. 무리해 그럴 거 없어. 결혼해 아이만 키우는 것도 좋은 삶이지."

<친애하고, 친애하는> 중에서, p107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조금씩 헤아려보게 되었다.

늘 바쁜 엄마로 살았던 엄마의 후회, 미안함. 그런 엄마를 미워했지만 그럼에도 늘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던 딸의 마음.


나의 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매일 보고 싶어, 사랑해,라고 말하는 여덟 살 아이의 엄마를 향한 사랑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우린 그럭저럭 괜찮은 모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결국엔 또 하나의 결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것.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것.


친애하고, 친애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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